대학 4학년 때. 교수님은 훤칠한 과 후배를 일으켜 세웠다. “운동부인데, 전공과목을 A 받았어요. 자, 박수!” 그 장면이 의아해서, 기억에 남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서다. 장희진이라는 수영선수가 있었다. 당시 14세 중학생이었다. 이 50m 자유형 한국신기록 보유자는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니, 태릉선수촌 입촌을 미뤄달라”고 했다. 하지만 선수촌 무단이탈로 처리됐다.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됐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을 치른 장희진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3년간 미국 동부지역 고교 최우수선수(MVP), 그리고 변호사가 됐다. 그는 후일 “한국 스포츠계는 운동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키운다”며 “선수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희진이 말한 ‘선수들의 권리’ 중엔 학습권도 포함됐을 터. 이른바 ‘장희진 파동’ 직후 수업참여권 보장, 최저학력제와 주말리그 도입 등 많은 시도가 있었다. 운동부원, 운동부학생 등으로도 불리다가 '학생선수'라는 명칭이 공식화한 것도 이때다. 성과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다. “학생선수의 탈사회화 문제와 학생선수 학습권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의견부터 “정부의 기준으로 제정된 학습권보장제가 행복추구권과 경기력 저하, 학생선수의 피로를 증가시킨다”는 입장까지 다양하다.
지난 20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 야구부의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1개월로 감경 조치했다. 배재고는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가야지, 가야지, 스벅 가야지’ 응원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비하했다는 물의를 빚었다. 6개월 징계 이유로 회자한 것이 학생선수의 ‘학습’과 ‘인성’이었다. 그런데, 징계가 1개월로 줄자 이들이 프로팀이나 대학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서둘러 나왔다. 배재고가 기회를 얻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의 상실, 이들을 가르쳤어야 할 ‘어른들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은 그새 사라진 듯하다. ‘장희진 파동’ 이후 26년. 대체 어른들은 뭘 했는가. 아직도 혼란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건너뛰지만, 배재고는 큰 관심을 받을 것이다. 근대 교육은 원래 운동장과 교실이 하나였다. 대학 4학년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말씀은, 칭찬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던 것 같다. 배재고도 한층 성숙해서 운동장과 교실에서 ‘A’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