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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문화노트] 자유 없는 ‘자유의 마을’, 호프 없는 ‘호프’

중앙일보

2026.07.21 08:08 2026.07.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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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문화부 기자

권근영 문화부 기자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비무장지대(DMZ) 남측 유일의 민간인 거주지다. 1953년 정전협정 후 유엔이 관리한다.

200명 내외의 주민들에게는 면세와 군 면제 혜택이 주어지지만, 연중 8개월 이상 살아야 주민권을 유지할 수 있다. 원주민과 그 자손들만 거주할 수 있는데, 32세가 되면 이곳에 남을지 나갈지 선택해야 한다. 여성은 외지 남성과 결혼하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 병역 기피 목적으로 악용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대북 체제 선전을 위해 건물은 북향으로 지었다. 이름과 달리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곳, 냉전 시대 이념 충돌이 남긴 기이한 곳이다.

이 점이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문경원·전준호의 영상 설치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에는 32세가 되어 마을에 남기로 결정한 남자(박정민 분)가, 영화 ‘버닝’에는 대남방송에 잠 못 이루는 파주 만우리 집과 서울 친구들의 호화로운 삶 사이에서 신음하는 남자(유아인 분)가 등장한다. 가수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 아티스트 스테판 크라스닌스키는 DMZ 인근에서 채집해 온 멸종위기종과 소리를 함께 전시했다.

영화 ‘호프’의 한 장면.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의 한 장면.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의 배경도 비슷하다. 198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 가상의 바닷가 마을 호포항이다. ‘간첩 신고는 113번’ ‘침투 밤낮 없고 신고 휴일 없다’ 같은 표어가 곳곳에 붙어 있다. 외계인이 나타나 읍내를 초토화해도 지원인력 하나 오지 않는 버려진 곳, 무장한 노인들이 자경단을 만들어 싸우지만 속수무책이다. 나홍진 감독은 “15년 전 캐나다 여행 중 우연히 ‘호프’라는 마을에 들렀는데, 대낮에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던 기묘한 공간이었다”며 그날의 낯선 풍경이 영화의 실마리가 됐다고 했다.

감독이 말한 곳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밴프로 가는 도중에 나오는 마을이다. 기자도 로키 산맥 찾아가면서 잠시 들렀던 경험이 있다. 영화 ‘람보’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빛바랜 입간판 외엔 정말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마을이었다. 영화 속 람보는 전우를 찾아 이 마을에 왔지만 전우도, 희망도 찾지 못하고 월남전 트라우마에 빠진다. 이제 80년대 영화 ‘람보’를 기억하는 이조차 없어 마을은 더 쇠락했다.

영화 ‘호프’는 어떨까. 파편화된 이야기의 배경이 꼭 DMZ일 필요가 있었을까도 싶지만,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아 신선하다. 감독의 말처럼 “가장 작고 초라하고 낮은 곳의 이야기가 온 우주적으로 확장된”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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