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한 김종빈 검찰총장(오른쪽)을 천 장관이 배웅하고 있다. 중앙포토
「
16화. 헌정사상 첫 수사지휘권 발동, 21년 만의 진실 게임
」
" 6·25 전쟁은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왕건 등이 모두 삼한 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을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다. (중략) 극소수의 인명 살상에 그쳤을 6·25 확대 내전에 그토록 많은 살상과 파괴가 미국 때문에 일어난 것을 보면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다.(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2005년 7월 27일 기고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
이 글이 발단이었다. 2005년 있었던
‘헌정사상 첫 명시적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얘기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하던 노무현 정부의 검찰 길들이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사건이었다. 2004년 청와대·법무부를 중심으로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나오자 “내 목을 쳐라”라며 반발했던 송광수 검찰총장과 강금실 법무장관의 충돌에 이은 검찰총장·법무장관 간 2라운드 격돌이기도 했다.
검찰 징비록 취재팀은 이 21년 전의 사건을 소환한다.
오늘날까지 권력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해부하기 위해서다.
특히 취재팀은 사건의 주인공인
천정배 전 법무장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을 각각 6월 26일, 7월 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두 사람의 증언은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진실 게임 양상마저 보인다. 다음은 처음 공개되는 비화(祕話)다.
2005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김종빈 검찰총장. 중앙포토
#2005년 10월 12일 오전 9시 **분.
김종빈 검찰총장이 천정배 법무장관(이하 경칭 생략)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70여 분간 이어졌다. 김종빈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구속 수사하도록 지휘해야겠다면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의외의 이유를 거론했다(※구체적인 통화 내용은 이 기사 중반부에 소개한다). 천정배는 통화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 총장께서 처지가 곤란하면 제가 수사지휘서 한 장 보내겠습니다. "
#이날 오후 5시를 넘긴 시각, 천정배의 수사지휘서가 검찰에 전달됐다.
#다음 날 오후 6시를 넘긴 시각.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이 노란 봉투를 들고 장관실로 달려왔다.
" 큰일 났습니다. 검찰총장이 사직서를 보내왔습니다. "
천정배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 슬그머니 (사직서를) 비공개로 보내온 거로 봐서는 총장이 사퇴 의사가 강한 것 같진 않습니다. 재신임을 물어 달라는 정도 아니겠습니까. 반려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
그러나 지방 출장 중에 문 수석에게 전화로 보고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노 대통령의 구체적인 판단 또한 이후 소개한다).
이는 천정배가 징비록 취재팀 인터뷰와 2020년 낸 저서(『나의 노선』)에서 밝힌 비화 중 일부다. 그는
수사지휘권 발동에 앞서 법무장관·검찰총장·민정수석 셋이 만난 자리에서 강정구 교수 사건이
논의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김종빈은 이를 부인했다.
" (수사지휘권 발동 당일) 천 장관과 70분 넘게 통화를 한 건 맞으나, 천 장관이 통화에서 수사지휘서를 보내겠다고 언급한 기억이 없다. 장관과는 둘이서 팔레스호텔에서 만나 (강 교수 구속 수사와 관련해) 토론을 한 적이 있으나, (문재인) 민정수석까지 셋이 만난 적은 없다. "
누구의 기억이 옳은 걸까. 징비록 취재팀은 이를 추적한다. 특히 김종빈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4월 검찰총장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모종의 당부를 했다는 사실도 징비록 취재팀에 공개했다. 노 대통령은 뭐라고 했을까.
2005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