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보고 후원자에게 비용을 대납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참석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연합뉴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에게서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고 제3자에게 비용을 대납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세훈 서울시장이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오 시장은 시장직을 상실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조형우)는 22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에 추징금 2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책에 상응하는 공직 자격 상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시장직 상실형이 선고되자 재판부를 바라보던 오 시장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오 시장 측 요청에 따라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한 혐의를 받는 사업가 김한정씨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오 시장 지시로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받은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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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죄질 좋지 않아”
재판부는 “오 시장은 서울시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자금법의 입법취지와 내용을 잘 알고 있음에도 범행을 주도했고, 재판 과정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했다”며 “공직선거법상 금지된 후보자 의뢰 여론조사 공표·보도 목적도 결부되어 있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치자금법 위반 행위가 약 한 달간 이어진데 그쳤고, 이후 오 시장이 명씨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건 유리한 양형사유로 참작했다. 재판부는 “비용을 대납시킨 여론조사 결과가 당내 경선이나 2021년 4·7 서울시장 선거에 미친 영향도 크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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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대납 요청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치자금법위반 혐의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부는 오 시장 측이 후원자인 김씨에게 여론조사 비용 대납을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명씨와 만나기도 전에 명씨를 도와주려고 김씨가 1000만원을 지급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오 시장 측이 김씨에게 여론조사 비용 대납을 요청했고, 그에 따라 김씨가 여론조사 비용 1000만원을 입금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할 동기도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오 시장은 지난 선거 낙선 등으로 정치적 위치가 다소 위축된 상황이었다. 당시 당내 경선 경쟁자인 나경원 의원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기대하는 한편, 명씨를 검증할 필요도 있었다”며 “이런 동기에서 명씨에게 일부 여론조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오 시장이 선거에서 당선되고자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으므로 해당 여론조사 비용은 오 시장의 정치활동을 위한 정치자금에 해당한다”며 “제3자가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건 정치인인 오 시장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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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10회 중 5회 유죄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지난 4월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 1심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 과정에서 오 시장은 줄곧 명씨를 만난 건 맞지만 여론조사를 의뢰하지는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가 오 시장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개인적 친분에 따라 명씨 측에 3300만원을 지급했을 뿐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여론조사 10회 중 최소 5회 여론조사에 대해 오 시장이 비용 대납을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비공표용 여론조사 3회에 대해 1000만원을 지급하고, 공표용 여론조사 2회에 대해 총 1100만원을 송금했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여론조사는 오 시장 측 의뢰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거나, 김씨가 지불한 비용이 해당 여론조사의 대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따라 김씨가 2021년 2~3월 명씨 측에 입금한 700만원과 500만원에 대해서는 대납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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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 시 서울시장직 상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박노수 특검보가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심 선고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오 시장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씨로부터 총 10차례(공표 3회·비공표 7회)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고, 강 전 부시장을 통해 김씨에게 여론조사 비용 3300만원을 대신 지급하도록 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강 전 부시장과 김씨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1심 판결이 확정되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직을 잃게 된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선출직 공직자는 형 확정 이후 5년간 공직에 취임하거나 임용될 수 없고, 현직자의 경우 그 직에서 바로 퇴직된다.
오 시장은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10개의 여론조사 중 5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그러나 저는 납득할 수 없다”며 “천하의 거짓말쟁이 명씨의 진술이 맞다는 전제 하에 선고가 됐다. 항소심에서 다투겠다”고 밝혔다.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 측은 “의미 있는 판결이라 생각한다. (항소 여부는) 판결문을 분석한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