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인 ‘생산적 금융’이 은행권 건전성은 물론 가계에도 부담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대출 행태를 저위험·저수익 가계대출에서 고위험·고수익 기업대출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책의 취지다. 하지만 은행권은 대출 연체로, 가계는 대출 제약과 고금리로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22일 중앙일보가 2020년 이후 한국은행이 집계한 월별 은행권 가계·기업대출 잔액을 분석한 결과다. 기업대출 잔액이 가계대출을 앞지르기 시작한 2021년 10월 이후부터 은행권 대출 연체율(전체 대출 잔액 중 1개월 이상 원리금을 갚지 못한 대출액 비중)이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전환한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은행권의 대출 연체율은 0.67%로 지난 2016년 10월(0.81%) 이후 9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차준홍 기자
김경진 기자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촉진하지 않던 시절(2025년 9월 이전)에도 기업대출 잔액 증가세는 가계대출을 크게 앞질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글로벌 긴축이 시작한 2022년에도 연간 기업대출 증가율은 8.5%에 달했다. 기업대출은 자연스레 증가하고 있었지만, 현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 올해 상반기 기업대출 증가율(3.2%)은 가계대출 증가율(1.4%)의 2배가 넘었다.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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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연체율 상승세는 기업대출 탓”
기업대출의 가파른 증가세는 은행 건전성에 부담이 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가계대출 연체율은 0.42%에 불과하지만, 기업대출 연체율은 0.74%를 기록했다. 특히 중소법인(0.98%)과 개인사업자대출(0.78%)의 연체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담보가 있고 고신용자 위주의 은행권 가계대출은 연체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경기를 타는 기업대출은 연체율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며 “2021년 하반기 이후 연체율이 상승 추세로 돌아선 것도 기업대출 증가세가 커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생산적 금융’을 투자 위험 요소로 설명한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미국주식예탁증서(ADR)을 상장한 우리금융지주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2025 회계연도 사업보고서(20-F)에서 “특정 부문에 대한 정부의 금융 지원 요청으로 의도치 않은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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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융 막으면 2금융…‘풍선 효과’ 키워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 오르는 ‘풍선 효과’도 이어졌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조으자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증가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6월 말 5대 시중은행 기타대출은 3조4658억원 불어나 목표치의 3.2배에 달했다. 은행권 대출을 조으자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상호금융·저축은행 등 2금융권 대출이 증가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주택관련대출(주담대·전세대출 등)은 지난 5월 말 148조121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10조5445억원 증가해 은행권 증가액(5조6555억원)을 넘어섰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산적 금융’ 추진 과정에서 신용의 원리에 반하는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며 “대표적으로 주담대가 기업대출보다 덜 위험한데도, 주담대에 위험가중치(대출의 손실 가능성을 수치화한 비율)를 높이는 정책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