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진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초창기 좀비 영화에서 팔다리도 제대로 못 가누던 기괴한 존재는 언제부터인가 달리고 있다. 까다로운 관객의 공포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 빨라졌다. 하지만 이젠 음바페 같은 순발력을 지닌 좀비가 나와도 식상하다. 지난 5월 개봉한 한국 영화 ‘군체’는 좀비를 한 번 더 업그레이드했다(아직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인데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연상호 감독은 좀비에게 소통 능력을 부여하고 지휘·복종 관계가 주는 공포를 창조했다.
영화 군체의 한 장면.
상명하복 가능한 뉴좀비의 공포
민주당 계파 갈라치기 경쟁 닮아
다수 국민은 거친 질주에 거부감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옛말처럼, 좀비가 사람을 닮아갈수록 공포감은 커진다. 군체가 된 좀비는 동물의 페로몬과 비슷한 점액질로 연결망을 만든다. 그런데 무서워진 좀비 영화에서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간 혈투를 벌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상황이 겹쳐 보였다.
군체는 리더의 지시에 맹종한다. 메시지가 전해지는 즉시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한다. ‘명청대전’이라는 이름의 당권 갈등을 부인하지 않는 친명·친청 계파의 진용이 떠오르지 않는가. 친청계의 메신저를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의 소통 방식은 특히 유사하다. 소통의 페로몬은 유튜브다. ‘이재명 정부 필패론’으로 이 대통령을 직격하자 계파의 인플루언서들이 일제히 참전했다. 유 작가는 어제도 보완수사권 폐지 입법의 혼선이 이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조회 수가 폭발하며 유튜버는 질주하고 메시지는 확산한다. 150만 당원을 향한 메시지가 5000만 국민까지 휩쓸 기세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합리적 국민이라면 문득 궁금해진다. 저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게 맞나? 왜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거나 ‘문조털래유’를 입에 올리면 안 되는가. 계파의 질주를 강요하는 메시지는 강력하지만, 논리를 종합해 봐도 내용은 듬성듬성하다. “이재명 정부는 개혁과제를 완수해야 할 ‘2기 촛불정부’다. 그런데 초심을 잃고 있다. 1기 촛불정부를 증축하라고 했더니 이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고 한다. ‘국민이 합니다’에서 ‘내가 합니다’로 바뀐 것 같다. 그러면 안 된다. 원래대로 돌아와라.” 보완수사권 폐지가 당위인 이유에 대해 친청계 유튜버의 좌장격인 김어준씨는 “우리는 노무현의 유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제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도 보완수사권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노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던 비극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앞선 당원의 등만 쳐다보고 전진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영의 이익이 최우선인 친청계의 공론은 일반 국민과 점점 괴리되고 있다. 여고생 살인범 장윤기를 보며 보완수사권 폐지를 걱정하는 국민은 틀렸는가. 과거 검찰 수사 도중 일어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이 수사 시스템 개편의 필요충분조건이 맞는가. 사건을 암장한 경찰을 불신하는 고 이채원양 부모의 울분은 노 전 대통령 유족의 그것보다 후순위인가. 검찰을 그토록 악마화하면서 조작기소로 억울하다는 이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주장은 왜 “미친 짓”이라 하나. 꼬리를 무는 의심에 속 시원한 답변은 듣기 힘들다. 보완수사권 폐지도,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도 모두 납득하지 못하는 국민이 문제인가. 친명계도 다를 바 없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만 바란다면서 김민석 전 총리는 왜 느닷없이 신천지 의혹을 꺼내 드는가. 당권과 공천권을 위해선 동지도 국민도 안 보이는 게 정상인가.
영화 군체의 결말엔 ‘앤트밀(죽음의 나선)’ 현상이 나온다. 행군하는 군대개미 선발대가 페로몬을 통한 정보 교류 오류로 후발대를 앞의 무리로 착각해 계속 원형으로 돌게 되는 현상이다. 개미 떼는 결국 전진만 하다 죽는다. 지금 여당의 갈등이 그런 끔찍한 결말로 이어진다면 나라 전체의 불행이다. 당원 과반의 마음을 얻고도 반대파와 숙명처럼 끝없이 싸우는 후유증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지금이라도 좀비 같은 질주를 늦추고 죽음의 나선을 멈출 방법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