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이란이 걸프 지역 내 미국 중앙정보국(CIA) 시설을 무인기(드론)로 공격한 것과 관련해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 개입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이란 측을 지원한 여부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란 전쟁의 의미가 강대국 간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 도서관에서 열린 회담 중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정보 분석가들이 이란의 CIA 시설 드론 공격에 러시아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해당 공격이 러시아의 목표정보나 개량 드론 기술 제공에 의한 것인지를 보고 있다.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공격 정확도가 매우 높았다는 점에서 러시아 배후설은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미 정보 분석가들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CIA 시설처럼 민감한 목표의 위치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가 이번 전쟁 기간 이란에 광범위한 기술을 지원해 온 것도 해당 가설의 가능성을 높이는 근거다.
CIA 관련 시설은 지난 3월 3일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 피해를 입은 건 최소 2곳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주재 미국대사관 내 CIA 지부와 이라크 동부 정보시설이다. 당시 사우디 국방부는 리야드와 알하르지 인근에서 드론 8대를 요격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사우디 당국은 당시 대사관 피격 사실만 확인했을 뿐, CIA 시설이 표적이었다는 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3월 3일(현지시간)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주재 미국 대사관 청사. AFP=연합뉴스
리야드 공격에는 러시아가 성능을 개량한 샤헤드 계열 드론 2대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드론이 대사관 외벽을 뚫은 뒤 두 번째 드론이 그 틈으로 들어가 폭발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공격 직후 러시아 배후설이 제기됐다. 러시아가 샤헤드-136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위성항법장치 ‘코메타-M’을 이란에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러시아가 코메타-M을 이란에 제공했다(월스트리트저널)” 는 보도다. 코메타-M은 이란산 장비보다 정확도가 높고 전파방해에도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가 이란에 중동 지역 미군 함정과 항공기의 위치정보를 제공했다(워싱턴포스트)”는 기사도 나왔다.
2022년 10월 17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발사한 이란제 샤헤드 자폭 드론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건물들을 타격하기 직전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만일 러시아가 CIA 시설 같은 민감한 표적을 공격하는 것을 지원했다면, 이는 단순히 이란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미국의 중동 작전을 직접 교란하는 수준의 개입이다.
다니엘 호프먼 전 CIA 지부장은 “러시아와 이란은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지원 가능성이 놀랍지 않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란이 CIA 시설을 의도적으로 노린 것인지, 대사관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타격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백악관과 CIA는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란 유엔대표부와 러시아 국방부, 사우디 정부도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2023년 5월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방공망이 러시아에서 발사한 샤헤드 드론을 공중에서 요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러시아와 이란은 지난 21∼22일 모스크바에서 외무부 전략 협의를 열고 양국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며 긴밀한 관계를 대외적으로 유지 중이다. 다만 23일엔 러시아는 미국 외무장관과도 회담하며 동시에 잠재적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