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국면에서도 올 2분기(4~6월) 한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반도체 수출 가격 상승 덕에 실질 구매력 지표는 38여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연간 3%대 성장이 가시화된 가운데, 한국은행의 추가 긴축 여력이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23일 한국은행은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속보치가 전 분기 대비 0.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한은은 GDP 증가율을 속보치·잠정치·확정치로 나눠 발표한다. 지난 5월 한은은 2분기 GDP 증가율을 0.2%로 전망했는데, 이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 1분기에 1.8%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2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기저효과에 따라 더 낮아질 것이란 예상도 뒤집었다.
박경민 기자
순수출과 민간 소비가 고루 성장세를 이끌었다.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 분기보다 1.4% 늘면서,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0.3%포인트로 집계됐다. 특히 반도체를 포함한 컴퓨터·전자 ·광학기기 업종의 성장 기여율이 30%가량을 차지했다. 2분기에 중동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고유가 국면이 이어졌지만, 수출이 수입을 압도하면서 성장세를 이끈 셈이다.
이동원 한은 경제통계2국장은 “예전 같으면 중동 사태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도 가능한 상황”이라며 “중동 사태가 공급 차질을 빚고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반도체 호황이 지속하면서 성장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나프타 수급 안정화 조치나 비축유 스와프, 원유 수입 다변화 등도 중동 사태로 인한 충격을 줄이는 데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민간소비도 전기 대비 0.4% 늘어 0.2%포인트의 성장 기여도를 나타냈다. 삼성전자의 상품권 환급 행사로 가전으로만 최소 3조원대 소비가 이뤄졌고, 증시 호황으로 백화점·의류·가방 등 소비가 늘어난 점도 한몫을 했다.
이대로라면 3·4분기 성장률이 평균 –0.1% 이상으로만 나와도, 올해 3%대 성장은 달성한다는 게 한은 전망이다. 이럴 경우 2021년(4.7%)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성장률이다. 중동전쟁 여파가 하반기에도 지속하는 점, 상반기 높은 성장률이 하반기 기저효과로 작용할 수 있는 점 등은 변수다.
실질 국내총소득(GDI)는 1분기에 이어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했다. 실질 GDI는 생산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GDI가 늘어나면 가계의 구매력과 기업의 투자 여력을 키운다. 2분기에는 반도체 등 수출품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전기 대비 3.6% 늘어 GDP(0.6%)를 크게 상회했다. 특히 전년 대비로는 15.6% 증가하면서 1988년 1분기(16.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반도체 수출물가지수
GDI 증가세는 최근 한은이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유심히 들여다보는 요소다. 소득 여건이 개선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어서다. 지난 16일 신현송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 배경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수요 쪽에서 오는 물가 압력이 상당히 중요할 것”이라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수요측 압력을 간과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 경제가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연내 추가 인상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일단 시장에선 오는 10월 추가 인상 전망이 많다. 다만 다음 달 4일 나올 7월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을 경우 한은이 8월에 연속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반도체 파급효과가 예상보다 견고했던 데다 하반기 내수 확산 모멘텀까지 가세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8월 회의까지 국제유가 급등세가 재차 확인될 경우 연속 인상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