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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서 꼭 만나자”…피란민 애환 따라 걷는 야행(夜行)길 열린다[피란수도 부산]

중앙일보

2026.07.23 00:08 2026.07.2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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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시기 부산 중구 40계단은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이자 피란민 삶의 현장이었다. 현재 40계단에 놓인 안내판에 이런 설명과 사진이 남아 있다. 위성욱 기자

피란수도 시기 부산 중구 40계단은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이자 피란민 삶의 현장이었다. 현재 40계단에 놓인 안내판에 이런 설명과 사진이 남아 있다. 위성욱 기자

부산에는 피란민의 애환이 서린 대표적 장소 두 곳이 있다. 중구 중앙동 40계단과, 중ㆍ영도구를 이어주는 영도대교다. 당시 부산항과 국제시장에서 가까워 40계단과 영도대교 주변으로 피란민 판자촌이 많이 들어섰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맞춰 부산시와 국가유산청은 이 두 곳을 주무대로 한 문화유산 체험 행사를 마련했는데, 특별 답사 일정이 일찌감치 매진될 만큼 인기를 끈다.



40계단, 피란 판자촌과 일터 이어줬다

23일 부산시에 따르면 올해 11주년을 맞은 ‘피란수도 부산 국가유산 야행(夜行)’은 24일과 25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영도대교와 피란수도 유산 일원에서 열린다. 야행은 밤에 국가유산과 역사 공간을 걸으며 관람ㆍ체험하는 행사다. 올해는 ‘기억의 도시 부산, 감정의 유산을 걷다’를 주제로 20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번 야행에서 40계단은 특별 야간 답사 코스에 포함됐다. 답사는 40계단과 임시수도기념관, 근현대역사관 등지를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사전예약 120석 예약이 끝났다.

현재 부산 중구 중앙동 40계단의 모습. 40계단은 부산역전 대화재 이후 옛 장소에서 약 25m 떨어진 곳에 새롭게 조성됐다.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조형물과 안내판이 놓여 있다. 위성욱 기자

현재 부산 중구 중앙동 40계단의 모습. 40계단은 부산역전 대화재 이후 옛 장소에서 약 25m 떨어진 곳에 새롭게 조성됐다.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조형물과 안내판이 놓여 있다. 위성욱 기자


산복도로 판자촌과 부산항ㆍ국제시장 일터를 이었던 생활 통로가 40계단이다. 아침이면 이 계단을 내려와 부두와 시장으로 흩어진 피란민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려 다시 이 계단을 올랐다. 계단 주변으론 부산항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원조ㆍ구호물자와 생필품을 파는 노점이 몰려 장터를 이뤘다. 높은 건물이 드물던 당시에는 40계단에서 부산항과 영도다리까지 내다볼 수 있어, 아이들은 이곳에서 일터에 나간 부모를 기다렸다고 한다.

고향을 잃은 피란민이 40계단 주변에서 고된 생계를 이어나간 기억은 노래로도 남았다.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는 40계단에 앉아 우는 이북 출신 피란민의 사연에서 시작해 국제시장과 영도다리 풍경을 노래한다.

지금의 40계단은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이후 도로 복구 때 옛 자리에서 약 25m 떨어진 곳에 다시 만든 것이다. 세월을 거치며 계단 주변 풍경은 변했지만, 물지게를 진 소녀와 젖먹이를 업은 여인 등의 조형물이 피란 시절 생활상을 전한다.



“영도다리에서 꼭 만나자” 애틋한 약속 깃든 영도대교

영도대교는 전쟁통에 가족과 흩어진 피란민들이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며 약속하고 다짐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도개교여서 피란민들 또한 쉽게 찾을 수 있어 이런 약속을 했다고 한다.


1951년 부산 영도대교 위로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는 영도대교는 피란민 만남의 장소이자, 일터와 생활 공간을 이어준 다리였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1951년 부산 영도대교 위로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는 영도대교는 피란민 만남의 장소이자, 일터와 생활 공간을 이어준 다리였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1950년대 영도대교 난간에는 가족의 이름과 고향을 적은 종이가 빼곡히 붙었고, 기다림에 지친 이들이 가족의 생사와 행방을 묻기 위해 점집을 찾으면서 다리 주변으론 100곳 넘는 점집이 들어서며 ‘점바치(점쟁이) 골목’도 생겼다.

당시 영도다리는 하루 두 차례 상판을 들어 부산 남항과 북항 사이 뱃길을 열었다. 피란민이 일터와 학교 등지를 오가던 중요 통행로이자, 연락선 등 선박이 다리 아래를 오간 해상교통의 관문이었다.

1952년 도개된 영도다리. 들린 다리 아래로 부산 남항과 북항 뱃길이 이어져 연락선 등이 다녔다. 사진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1952년 도개된 영도다리. 들린 다리 아래로 부산 남항과 북항 뱃길이 이어져 연락선 등이 다녔다. 사진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야행에서는 25일 오후 8시 영도대교를 야간 도개하고, 부산항 제1부두 등 피란수도 부산유산 11곳의 역사와 의미를 담은 미디어파사드 영상을 선보인다.



피란수도 유산, 2030년 세계유산 등재 목표

올해 야행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19~29일)와 연계해 진행된다. 영도대교를 포함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11곳은 지난해 국내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올랐다. 부산시는 올해 유네스코 예비평가 절차를 밟아 2030년 피란수도 유산 11곳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류승훈 임시수도기념관장은 “야행은 물론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벡스코에서도 피란수도 특별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며 “부산에서 피란수도 시기 관련 행사가 꾸준히 마련돼 당시 생활상을 기리는 시민이 많다는 점을 위원회 측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주.위성욱.이은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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