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자개장을 기타 모양으로 만든 '남자의 길'을 들고 있는 미술가 배영환. 사진 리움미술관
" 영환 씨는 타인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 그 짐이 무겁겠다고 느끼고 그걸 유머로 감싸서 위로하는 사람이었어요. "
‘여전사’ 이미지로 잘 알려진 미술가 이불이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23일 오후 서울 이태원로 리움미술관 강당,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지난달 19일, 갑자기 세상을 뜬 미술가 배영환(1969~2026)을 추모하러 모인 150여명이다. 상처받은 시대를 위로하며, 저항의 감수성을 표현해 온 미술가 배영환을 못내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를 추억했다.
23일 오후 서울 이태원로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고 배영환 작가 추모식'에서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과 성견 스님이 망자를 부르는 청혼 의식을 하고 있다. 권근영 기자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배영환은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건설현장에 버려진 나무와 깨진 술병,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삶의 흔적을 돌아봤고, 소외되고 잊힌 사람들의 목소리에 끝까지 귀 기울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깨진 술병이 영롱하게 빛나고, 알약과 약솜이 상처를 어루만졌다.
후배 미술가 배영환의 추모사를 하는 이불 작가. 권근영 기자
길상사 주지 덕조스님과 성견 스님이 망자의 넋을 부르는 청혼(請魂) 의식으로 추모식을 시작했다. 반야심경으로 먼저 간 이와 남은 이들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동료 예술가 안규철, 백지숙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안소연 아뜰리에 에르메스 디렉터, 가타오카 마미 일본 모리미술관장, 이제임스 갤러리 BB&M 대표도 추모사로 고인을 추억했다.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가 추모곡으로 밴드 산울림의 노래 ‘청춘’을 연주하자 장내는 숨죽인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이 노랫말을 캔버스에 병뚜껑과 약솜으로 붙인 ‘청춘’(1999)은 가장 널리 사랑받은 작품 중 하나. 조용필의 ‘물망초’, 민중가요 ‘타는 목마름으로’ 등 유행가 가사를 알약이나 깨진 술병 조각, 눌어붙은 껌 등 남루한 재료들로 붙여 나간 ‘유행가’ 시리즈엔 “어떤 장르도 유행가만큼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지는 못했다”는 그의 지론이 담겼다. “어떤 노래는 부르면 잡혀가는데도 그때는 누구나 그 노래를 불렀다. 그 시대성, 당시 한국이라는 사회의 독특한 특징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전에 작가는 말한 바 있다. 유행가 써 붙이던 깨진 술병은 밤을 잊은 부엉이, 밤을 밝히는 샹들리에 ‘아주 럭셔리하고 궁상맞은 불면증’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또한 버려진 가구의 화려한 자개 장식을 이용해 만든 통기타 '남자의 길'(2005) 연작으로 권위, 성공,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짊어졌으되 젊은 날의 낭만을 찾아 일탈하고픈 대한민국 성인 남자들을 위로했다.
배영환의 '청춘'(1999). 캔버스에 병뚜껑과 솜으로 유행가 '청춘'의 가사를 붙였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배영환은 일반적인 미술 작품의 통념에 카운터펀치를 먹이는 작가였다. 대중성과 통속성, 하위문화 등을 미술의 범주로 가져온 그는 ‘포스트 민중미술’의 주요 작가로 불렸다.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유행가3: 광주 상무대'로 배영환은 ‘광주비엔날레 현장상’도 받았다.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의 주요 내용을 당시의 금지곡ㆍ대중가요와 병치한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작업이다. 2004년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고, 2005년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버려진 컨테이너를 개조해 농어촌 등 소외 지역에 작은 도서관을 보급한 '도서관 프로젝트-내일(來日)'로 2013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최우수상도 받았다.
깨진 술병을 샹들리에 모양으로 만든 '불면증-디오니소스의 노래'(2008). 사진 BB&M
무료식사 배급소의 지도가 담긴 '노숙자 수첩'을 제작해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줬고, 갓길 통행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어린이용 헬멧에 오색 풍선을 달아준 '갓길 프로젝트'도 만들었다. 서울 신교동 국립서울농학교와 국립서울맹학교 학생들과 함께 벽화도 제작했다. 농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그리고 쓰게 한 뒤 이를 도자 타일로 구운 ‘수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맹학교 학생들의 소원을 점자로 새기고 각자의 손바닥을 찍은 ‘점자-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의 청운동 작업실을 물려받은 동료 예술가 박찬경이 말했다.
" 보잘것없고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극락을 향하는 그런 예술가로 배영환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연희동 거리를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극락을 둘러보는 고인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예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것“이라던 배영환의 부재가 큰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