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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과학 올림피아드 금메달과 노벨상 사이의 간극

중앙일보

2026.07.23 08:18 2026.07.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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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매년 7월부터는 국제 수학·과학 올림피아드가 열린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7월 4일 국제물리올림피아드를 시작으로 화학·수학·생물 국제올림피아드가 연이어 개최되고, 8월에는 정보·지구과학·천문/천체물리 분야의 국제올림피아드가 열려 젊은 학생들이 기량을 다툰다. 우리나라는 1988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처음 참가한 후 매년 올림피아드 참가를 늘려 왔는데,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올해만 해도 이미 물리와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참가자 전원이 금메달을 획득해 국가 종합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는 우리나라 영재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실력이 다른 나라 영재에 비해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학·과학 영재 세계적 수준인데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안 나와
알려진 지식 이해만으로는 부족
남과 다른 생각 해야 노벨상급 인재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없을까? 세계적인 실력을 갖고 있던 우리나라의 수학·과학 영재들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천재성을 잃어버리는 것인가. 그 해답은 ‘과학을 잘한다’는 의미가 올림피아드 학생일 때와 노벨상급 과학자일 때가 다르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올림피아드 학생일 때 푸는 문제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답이 있는 문제고, 그 해답은 이미 알려진 지식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알려진 지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잘 조합하는 능력이 ‘과학을 잘하는 데’ 중요하다. 반면에 노벨상을 받는 과학적 업적은 다른 사람들이 연구한 일이 없어 새롭게 개척한 분야이거나, 과거 진리라고 알려진 지식의 오류나 한계를 밝히고 새로운 학설을 내세운 것들이다. 즉 노벨상급 과학자는 남의 주장을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남들과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과 연구 지원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키워주는 데 매우 취약하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알려진 지식을 빠르게 토해내는 능력을 기르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 단계에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식에 반하는 자기 나름의 질문은 금기시된다. 결국 올림피아드 대표로서의 성적은 잘 낼 수 있지만, 위대한 노벨상급 과학자가 되는 능력은 기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도 쉽게 고쳐지지 못하고 대부분은 알려진 지식을 조합하는 그저 그런 논문을 내고 박사과정을 졸업하게 된다.

그러면 박사로서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면 상황이 바뀌는가. 이때에는 연구과제 수주가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제의 실패는 미래 경력에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성공이 거의 확실시되는 알려진 지식을 적당히 조합한 연구과제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된다. 게다가 용기를 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주류 학파의 해석과 다른 생각으로 연구과제를 제안하면 탈락하기 일쑤다. 심사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제 심사 때 “세계 어디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저만의 독창적 아이디어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심사자들이 고개를 갸웃하지만, “선진국에서 막 비슷한 과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따라가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과제를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처럼 남과 다른 독특한 일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어렵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까지 과학기술을 주로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생각해 왔다. 헌법부터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을 통하여 국민 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제127조 1항) 그러기에 인류 지성의 새로운 지평을 탐구하는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다.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를 검출해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LIGO 프로젝트에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1990년부터 20년 이상 막대한 지원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특혜”라며 국회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중단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우리나라의 위상도 바뀌었다. 지금은 이미 AI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알고 있고, 앞으로 ‘AI 과학자’가 활동할 때도 멀지 않았다. 즉 사람이 할 일은 알려진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질문을 하는 것이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위상이 이제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바뀌었다. 선진국의 입장에서는 남의 지식만 이용할 수 없고, 인류의 지적재산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아무도 안 가 본 길을 먼저 개척해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할 때가 된 것이다. 바로 노벨상급 과학자들이 시도하는 방식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교육과 연구개발에서 ‘남이 해본 길을 따라가는’ 방식에서 ‘남과 다른 길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AI시대의 요구이기도 하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우리나라 국가 발전 단계의 요구이기도 하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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