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 이상주)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단하면서 천문학적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주식담보대출, 지분 매각, 계열사 배당 확대, 비상장 자산 활용, 보유 현금과 부동산 등 가용한 수단을 두루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력한 카드는 주식담보대출이 거론된다. 최 회장이 가진 SK㈜ 지분(1297만여 주) 가치는 2년 전 항소심 당시 2조514억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에 힘입어 선고일인 지난 24일 종가(63만원) 기준 약 8조17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불어났다. 자산 가치가 커진 만큼 담보 여력도 늘어난 셈이다. 다만 최 회장 보유 주식의 약 21%(5분의 1)가 이미 대출로 잡혀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담보가치가 주가에 그대로 연동되는 만큼 주가가 꺾이면 조기 상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난관이다.
김경진 기자
법원 “노소영, 가사·양육·SK 성장에 기여” 이 때문에 SK㈜ 지분 일부 매각 가능성도 함께 언급된다. 보통 지분을 팔면 지분율이 떨어져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도 커지지만, 주가가 급등한 덕에 SK㈜ 지분의 단 1%(72만4900주)만 매각해도 약 4568억원(24일 선고일 종가 기준)을 손에 쥐게 되기 때문이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 회장 측 SK㈜ 지분율이 약 31.8% 수준(자사주 소각 시)인 점을 감안하면, 1~2% 매각은 경영권 유지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거란 해석이 나온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주식 가치가 올라 주식의 일부만 처분해도 돼 지배구조의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 등 우량 자회사의 배당 확대 ‘카드’도 있다. 지난해 최 회장의 핵심 수입은 SK㈜와 SK하이닉스 보수(82억5000만원) 및 SK㈜ 배당금(세전 1038억원) 등으로 재산분할금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배당을 늘리면 SK㈜의 수입이 커지고, SK㈜가 다시 배당을 확대하면 최대주주인 최 회장의 수입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항소심 판결 당시(2024년 6월) 하나증권은 “배당금 지불 능력이 높은 SK텔레콤이 배당 증대에 나서며 우량 자회사들의 배당이 그룹 총수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개인 보유 자산인 SK실트론 지분(29.4%) 매각도 언급된다. 해당 지분의 가치는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현재 두산그룹은 SK㈜가 가진 SK실트론 지분 70.6%를 인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노 관장의 재산분할 비율을 3분의 1로 정한 것을 놓고 법조계에선 “분할 비율이 10~20%대로 정해질 줄 알았는데 노 관장 몫이 예상 외로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앞서 대법원은 최 회장의 장인이자 노 관장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불법 행위로 얻은 금전 제공이므로, 이를 근거로 노 관장이 기여분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했다.
SK 주가 급등도 재산분할 비율에 반영 그럼에도 노 관장이 1조원에 가까운 분할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에 따라 SK 주가 급등을 분할 비율 산정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이혼 후 집값 하락을 재산분할액 계산에 반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노 관장이 30여 년 혼인생활 동안 가사, 자녀 양육, 그리고 기업 대외활동 지원으로 SK 성장에 기여한 몫이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혼인기간 중 최 회장의 경영활동으로 주식 가치가 크게 증대됐고, 이에는 노 관장의 가사 및 양육, SK그룹에 관한 대외적 활동이 기여했다”고 했다.
일각에선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전업주부로 양육·가사를 전담한 사실만으로 재산 40~50%를 분할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40~50%도 통상적이지만, 몇천억원 단위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3분의 1이 인정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 하루 1.3억 이자 이혼 전문 강현지 법무법인 선한 변호사는 “가사·양육만 반영된 건 아니고, 노 관장이 부친의 영향력을 비롯해 최 회장을 유무형적으로 지원해 SK 선장에 기여한 면까지 인정돼 분할 비율이 3분의 1로 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금 조달의 ‘시계’는 촉박하다. 판결문 송달 기간(1~2주)과 상고기한(2주)을 고려하면, 최 회장이 대법원 재상고를 포기할 경우 약 한 달 안에 재원 마련의 윤곽을 잡아야 한다.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는 연 5%(하루 약 1억2900만원)의 지연손해금이 붙는다. 재상고 시엔 기약 없는 소송전을 다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이번 파기환송심 판단은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9년 만에 나온 것으로, 2심이 인정한 1조3808억원에서 약 4300억원 줄어든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