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에서 호르무즈해협에 해군 함정 등 지원 전력을 파견하는 방안이 한층 구체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들어 미국·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며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코너에 몰린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출구전략’ 차원의 공동 대응을 요청한 측면이 크다.
미군 중부사령부가 7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공개한 영상 속 한 장면. 미군이 호르무즈해협 인근의 이란 목표물을 타격해 불꽃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포착된다. 사진 중부사령부 X 캡처
26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호르무즈해협의 상황이 안정된 이후 정부의 기여 방안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달까지만 해도 “결정된 게 없다”던 소극적 입장에서 한결 달라진 기류다.
앞서 국방부는 ▶국제사회와 지지 선언·다국적 연합체 동참 ▶인력 파견 확대 ▶군사 정보 공유 ▶군 자산의 직접 투입 등 단계별 대응을 마련했다. 국방부는 최근까지도 이는 정부의 자체 검토안에 가까울 뿐 참여 여부는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달 들어 중동 상황이 재차 격화하며 정부 내 “미 측의 기여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란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같은 맥락에서 미 온라인 전문매체 악시오스는 24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상업 운항 안전을 확보할 ‘다국적 연합체’ 창설을 위한 고위급 회의를 다음 주 영국 런던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원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과 댄 케인 미 합참의장 등 고위 관계자가 참석해 동맹·우방국 차원의 공동 대응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다. 특히 매체는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해군의 기뢰제거(소해)함, 전투함, 드론 등 군사 자산을 파견해 달라고 요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이란은 지난달 18일 종전 MOU를 맺었지만,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민간 선박들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실상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이란 측도 MOU 파기를 선언하며 이란의 공격과 미국의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중동 발 스텝이 꼬이면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외교·군사적 ‘지원 사격’을 요청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 직접적인 “군함” 파견을 콕 찍어 요청한 건 아니라면서도 미 측의 요청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앞서 “미측으로부터 구체적인 특정 자산 파견을 요청받은 바는 없다”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자유를 위한 실질적인 기여 방안에 대해 한반도 대비태세와 국내법 절차 등 제반 요인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가 특히 ‘국내법 절차’를 언급한 대목은 함정 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을 부른다. 국방부는 그간 우리 전력을 투입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이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으며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일어났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으로 피해 입은 선박 외부의 모습. 사진 외교부
정부는 특정 자산의 투입 여부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지만, 미 측이 기뢰제거 활동을 원하는 만큼 소해함 파견이나 타국의 기뢰 제거 활동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리 군은 총 12척의 소해함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역내 정보 수집·초계 활동을 위한 함정 또는 항공기 지원이 가능할 수 있다.
향후 영국 등 유럽의 미 동맹국 주도로 다국적 연합체가 출범하면, 한국도 원론적인 동참 의사는 밝히되 ‘호르무즈해협 내 전투 상황 종결’과 ‘국회 동의 절차’ 등을 조건으로 실제 전력 투입 시기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또 소해함을 넘어 초계함이나 정보함 등을 중동으로 이동시키는 건 대북 방어 태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국회와 여론의 반응도 살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악시오스는 “많은 국가들이 내세운 핵심 조건 중 하나는 해협에서 전투가 끝나 국제 해상 임무 수행에 현지 상황이 충분히 안전해지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