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눈보다 빨랐다. 경고도 없었다. 순식간에 권투 글러브를 낀 주먹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지만 이미 늦었다. 바람이 귀 옆을 스쳤다.
" 요즘 이 정도야. 뭘 놀라고 그래? "
그 남자는 씩 웃었다.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등 복싱 동작을 쉬지 않고 선보였다. 어깨 너비보다 약간 넓게 벌린 발과 탄력 있게 구부러진 무릎. 탄탄한 허리는 매끈하게 휘어졌다. 현란한 스텝 위에서 그는 자신만만하게 압도했다.
권노갑(96·이하 경칭 생략)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자택에서 일어난 일이다. 열여덟에 호남 복싱 챔피언에 오른 뒤 80년이 다 되도록 잊지 않는 폼이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동교동계의 맏형,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고비를 온몸으로 돌파해 온 권노갑의 저력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백세를 앞둔 지금도 여전히 서슬이 퍼렇다.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한 흔적까지 갖고 있는 그가 이토록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걸 보면 본래 타고나기를 ‘강골’인가 싶지만, 아니다.
「
40년째 당뇨 조절, 그 가루의 비밀
」
57세에 예고 없이 권노갑을 찾아온 당뇨병. 당뇨는 그의 영원한 동지이자 삶의 목적이었던 DJ를 오랫동안 괴롭히고 결국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던 바로 그 병이었다.
‘같은 병, 다른 결말’. 2009년 DJ가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 권노갑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만성 콩팥병, 혈액투석으로 동지가 스러져 가는 모습을…. 하지만 그는
당뇨에 전립선암까지 이겨내고 96세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권투 자세를 잡고, 필드로 나가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다.
그가 건강하게 DJ보다 17년을 더 살아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전립선암. 아무리 상대 생존율이 높은 ‘착한 암’이라지만 암은 암이었다. 2012년 진단 당시 그의 나이 82세. 담당의는 고령을 이유로 “전이가 없는 상태이니 수술하지 말고 지켜보자”며 만류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명확하고 깔끔하게 매듭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에게 암세포와의 적당한 타협이란 없었다.
‘암세포는 잘라낼지언정 그 과정에서 생길 체력 저하와 후유증 같은 부작용은 어떻게 하려고?’ 주변의 우려에도 그는 보란 듯이 일어나 한 달 만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권노갑 이사장이 중앙일보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당뇨 환자에게 식탁은 매일 앉는 전쟁터다. 40년째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 자칭타칭 ‘당뇨 박사’라는 그였다. 이제껏
언론에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그의 아침 식탁을 확인했다.
‘얼마나 귀한 산해진미로 건강을 챙기고 있을까?’ 당대를 휩쓴 원로 정치인의 거창한 보양식을 떠올렸다. 하지만 백세 노 정객의 아침 밥상에 놓인 건 ‘
4개의 컵’뿐이었다. 각기 다른 색깔의 액체가 담긴 컵들. 어느집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그 재료들 속에 아주 특별한 비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