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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와 ‘오디세이’의 시혜적 다양성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중앙일보

2026.08.09 08:18 2026.08.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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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논설위원

문소영 논설위원

방탄소년단(BTS)이 내년 그래미상을 보이콧한 건 흔한 연예계 가십이 아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하나의 문화사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다.

발단은 지난 6월 그래미가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해 내년부터 시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팬들 사이에는 “BTS에 본상 안 주려는 꼼수”, “K팝을 따로 가둬둘 울타리를 만든 것”이란 불만이 일었다. 지난달 말 BTS는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며 내년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래미 ‘아시안팝’, BTS 반발
‘오디세이’ 다인종 캐스팅 논란
피로감 쌓이는 서구 문화산업
K컬처가 균열 부를 수 있을까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공연하는 BTS. [로이터=연합뉴스]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공연하는 BTS. [로이터=연합뉴스]

그러자 그래미를 주최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 하비 메이슨 주니어 CEO가 해명에 나섰다. 아시안 팝에 출품해도 ‘올해의 앨범·노래·레코드’ 같은 본상에 함께 도전할 수 있으니 ‘격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아시안 팝’이란 대체 무엇이며 미국의 레코딩 아카데미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래미가 말하는 그냥 ‘팝’은 사실 영미권 음악산업의 팝이다. 그런데도 ‘영미 팝’이 아니라 그냥 ‘팝’으로 보편성을 획득한다. 반면 K팝은 ‘지역의 팝’이 된다.

아시아를 타자화한 ‘아시안팝’
그래미 규정은 아시안 팝을 “아시아 시장에서 시작됐거나 널리 알려졌고,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쓴” 음악이라며 K팝·J팝·C팝을 예로 든다. 메이슨 CEO는 이들이 “음악·퍼포먼스·비주얼을 아우르는 뚜렷한 음악적 정체성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산업·미학이 다른 한국·일본·중국 팝이 과연 하나의 음악적 정체성을 공유할까. 아시아 내부의 차이는 지우고 서구에서 보기에 ‘아시아적인’ 이국적 타자를 만든 셈이다.

여기에는 미국 ‘지역’ 상이면서 ‘세계 보편’ 상처럼 군림해온 그래미의 모순도 있다. 그래미는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발매·유통된 음악만 심사하는 미국 시장의 상이다. 그럼에도 “음악계 최고의 영예”라 자처해 왔고, 우리 역시 한국인이 그래미를 타는가에 촉각을 세워왔다. 우리는 영미권의 ‘세계 보편성’을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온 것은 아닐까. BTS의 보이콧은 그 권위에 균열을 낸다.

이 판에 먼저 통쾌한 한 방을 날린 한국인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2019년 미국 기자가 “한국 영화가 세계에 영향을 끼쳤는데도 오스카(아카데미상) 후보에 못 오른 이유가 뭘까요?”라고 묻자 그는 답했다. “좀 이상하지만, 별일 아닙니다.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니까요. 아주 지역적(very local)이잖아요.” 몇 달 뒤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받자 ‘드디어 오스카가 지역영화제에서 벗어났나’라는 농담이 돌았다.

서구, 특히 영미권이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시혜적으로 베푸는 다양성은 최근 흥행 중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에서도 드러난다. 개봉 전 아프리카계 배우 루피타 뇽오가 헬레네 역을 맡았다는 소식에 일론 머스크까지 뛰어들며 문화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하자 논란은 식었다. 영화 완성도 덕도 있지만, 뇽오가 헬레네와 그 쌍둥이 역으로 1인 2역을 하는데도 합쳐서 5분밖에 안 나오기 때문이다.

헬레네 역을 맡은 아프리카계 배우 루피타 뇽오. 이 장면에서는 헬레네의 쌍둥이 자매인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헬레네 역을 맡은 아프리카계 배우 루피타 뇽오. 이 장면에서는 헬레네의 쌍둥이 자매인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기자는 그래서 더 불편했다. 배우는 ‘반PC’ 진영의 총알받이가 됐는데 정작 영화 안에서는 주변부에 머문다. 한국계 윌 윤 리 등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나오지만 대부분 조연이나 엑스트라다. 사실 고대사 개연성을 따지면 아프리카계보다 동아시아인이 그리스 전사로 나오는 쪽이 더 황당하다. 정작 그리스계 배우는 드물다. 고증을 무시하면서 다양성을 택했지만 서사의 권력은 나눠주지 않은 것이다.

영화 ‘오디세이’(2026)에서 오디세우스(왼쪽, 맷 데이먼)의 군대는 다인종 배우가 연기한다. 가운데는 인도계 히메시 파텔, 오른쪽은 한국계 윌 윤 리.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오디세이’(2026)에서 오디세우스(왼쪽, 맷 데이먼)의 군대는 다인종 배우가 연기한다. 가운데는 인도계 히메시 파텔, 오른쪽은 한국계 윌 윤 리.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물론 신화 판타지에 무슨 고증이냐는 반론은 가능하다. 게다가 놀란은 호메로스의 영웅 모험담을 전쟁 뒤 죄책감과 환멸을 다룬 현대적 우화로 바꿨다. 낯선 이를 환대하되 손님도 주인의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 법도 ‘크세니아(Xenia)’를 강조하고, 그것이 무너지면서 “우리 문명도 무너지고 있다”고 영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경고한다. 냉전 이후 번영을 구가해 온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글로벌리즘이 분쟁과 난민·이주민 문제, 신국가주의 부상 속에 흔들리는 현재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청동기 그리스는 오늘날 미국의 은유이니 다인종 캐스팅도 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가르치려 드는 서구 문화산업
그런데 바로 이것이 씁쓸한 역설을 보여준다. 영화는 인종별 대표 얼굴을 ‘유엔 대표단’처럼 배치했지만 주인공은 너무나 앵글로색슨족 얼굴인 맷 데이먼의 오디세우스다. 이야기는 서양이 그 뿌리로 삼는 그리스 고전이다. 비서구인은 독자적 문화의 주체가 아니라 서양 고전의 보편성을 증명하는 장식품이 될 뿐이다.

서구의 급변하는 기준도 피로를 부른다. 예를 들어, 헬레네 못지않은 그리스신화 대표 미녀 안드로메다는 남방 아프리카 왕국 ‘아이티오피아’ 공주인데도 오랫동안 유럽계 배우가 맡아 ‘화이트워싱’을 해오더니, 이제는 그리스인 헬레네를 아프리카계 배우가 연기한다. 문화예술계를 주도하는 서구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인종주의자나 깨어나지 못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무엇이 올바른 재현인지, 무엇이 진정한 포용이고 다양성인지, 서구 문화산업이 일방적으로 그때그때 정하고 가르치려 든다. 이에 대한 피로감과 반발심이 오늘날의 혼돈에 한몫하지 않았을까.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우리 자신이 크세니아를 아전인수로 악용하며 문명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고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캐스팅 자체가 그 말을 증명한다.

이 상황에서 BTS 같은 K컬처는 하나의 대안이다. 매기 강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다른 길을 보여준다. 서구 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서구가 규정한 ‘아시아성’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다. K팝의 빛과 어둠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다룸으로써 K컬처는 이국적 타자가 아니라 주체가 됐다. 아시아 여성 아이돌이 히어로로 활약함으로써 할리우드의 선언적인 인종·성별 캐스팅과 달리 자연스러운 ‘다양성’을 보여줬다.

‘오디세이’가 말한 한 문명의 몰락이 현실이라면 이제 K컬처가 새 문명에 무엇을 보탤지 생각할 때다. 서구의 인정에 목말라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서구화의 수혜를 입었고 서구 문명과의 혼종으로 재탄생한 우리가 서구를 배척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바다의 사람들’일 수 있다. 청동기 미케네 문명을 무너뜨린 ‘공포의 바다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과 규칙을 함께 건설하는 ‘우호적인 바다 사람들’ 말이다.





문소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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