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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점 항아리에 담겼다, 광복 이전 북녘

중앙일보

2026.08.11 08:02 2026.08.1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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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형태에 청화백자 안료로 각종 길상 무늬를 그린 해주항아리.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옹기 형태에 청화백자 안료로 각종 길상 무늬를 그린 해주항아리.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해주항아리. 이름 그대로 19세기 말~20세기 초 황해도 해주·봉산 일대의 민간 가마에서 만들어진 항아리다. 생긴 건 큼직한 옹기인데 청화백자 안료로 다채로운 무늬를 넣었다. 간장·된장·김치 등을 담아두되 대청마루나 방 안에서 고급 소품 역할도 했다. 말하자면 왕실이나 지체 높은 양반들이 즐기던 취향이 중인 계층의 실용 및 과시 욕구와 만난 생활형 백자다. 해주항아리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는 ‘결’이 달라 민속유물로 여겨졌고, 그래서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품(총 256점)이 가장 많은 편이다. 가장 다채롭게 볼 수 있는 곳도 민속박물관 파주 분관의 개방형 수장고다.

해주항아리 수장고가 마치 축소 이전이라도 한 듯 민속박물관 본관(서울 경복궁 내) 기획전시실에 들어섰다. 12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제로ZERO: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을 통해서다. 지난 4월 목인박물관 목석원의 김의광 관장이 기증한 232점 가운데 88건을 골라 타워형으로 진열했다. 이를 포함해 북한 지역 민속유물 316건 346점을 한데 모아 광복 이전 북측의 생활문화를 조명한다. 11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장상훈 민속박물관 관장은 “해방 전 민속조사를 통해 확보된 북한 쪽 수집품이 그간 제대로 선보인 적 없는데, 황해도·평안도·함경도의 삶과 풍속을 편견 없이 바라보려고 기획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해주항아리 88점을 한데 모은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해주항아리 88점을 한데 모은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이 같은 접근을 대표하는 유물이 해주항아리다. 해상 교통이 발달한 해주 일대는 양질의 백토 등 원료가 풍부했고, 조선 후기 들어 중앙 관요의 통제가 약화하면서 청화백자 전통을 민간 가마가 이어받았다. 모란·물고기·용·십장생 등 민화풍 문양에 부귀·다산·장수·풍요를 바라는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아 황해도·평안도는 물론 서울·경기에서도 잘 팔렸다. 또 다른 생활용품인 ‘해주반’ ‘해주반닫이’도 잘 나갔다. 이들과 함께 만나는 ‘박천반닫이’ ‘개성반닫이’ 등에서 남과 북이 공유하는 소반·서랍장 문화를 읽는다.

각양각색 탈바가지도 눈에 띈다. 국가무형유산으로 보호되는 ‘북청사자놀음’(함경남도 북청군 일대), ‘봉산탈춤’(황해도 일대) 등이 애초 북녘 민속놀이란 걸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에겐 망향의 정서가 스민 원산 일대와 금강산이 개항기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생몰연도 미상)에겐 판매용 산수화 대상일 뿐이었단 점도 새삼스럽다. 하도겸 학예연구사는 “우리에게 고착된 이미지 이면의 역사를 ‘민속 관점’에서 불러냈다”고 말했다.

소나무와 누각 문양은 황해도 해주 자기의 특징 중 하나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소나무와 누각 문양은 황해도 해주 자기의 특징 중 하나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 의도에 비해 전시 연출은 아쉬운 점이 많다. 관객 이해를 돕기 위해 진열장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미디어아트는 유물 감상을 오히려 방해하는 편이다. 분단됐다는 이유로 광복 이전 유물까지 ‘북한’ 범주에서 봐야 할지도 의문이다. 장 관장은 “북녘, 이북 등 단어를 놓고 고민을 했지만 북한이라는 큰 테두리를 치고 광복 전후를 나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건욱 전시과장은 “전시 대상·형식 관련해 통일부 및 이북5도청 관계자들과 물밑 대화를 많이 했다”고 말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북한 주제 전시가 ‘뜨거운 감자’임을 내비쳤다.

민속박물관 개관 80주년과 광복 81주년을 맞아 색다르게 접근한 이번 전시는 2031년 세종시로 옮겨 새출발하는 박물관의 장기 구상도 반영했다. 민속박물관은 세계민속관을 신설해 각국 민속을 아우르는 한편 재외동포 민속을 소개하고 ‘북한’까지 개별 범주로 다루겠다는 포부다. 장 관장은 “장기적으로 DMZ(비무장지대)에 인접한 파주 분관을 북한 전문 민속전시관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소장품 공개구입 공고를 내면서 ‘북한 민속 일반’으로 회령 오지그릇, 평양 나전칠기, 북한 손전화 등의 추가 확보도 예고했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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