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1인극이 많아졌다. 지난해 공연했던 국립극단의 ‘라이오스’, 삼일로 극장의 모노드라마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이번 여름에도 ‘갈라진 마음들’ ‘나는 나의 아내다(사진)’ ‘플리백’ 등 여러 편이 공연되었다.
한 명의 배우가 출연하니 제작 경비가 절약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1인극은 출연 배우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표현해야 하고 홀로 공연의 성패를 결정하는 극한의 공연 형식이다. 그런데 왜 지금 다시 이 고독한 1인극이 전성기를 맞은 걸까.
과거에도 1인극이 번성했던 시기가 있었다. 1960~70년대에 소극장이 생겨나면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나 ‘빨간 피터의 고백’처럼 소극장에 적합한 1인극이 일차 전성기를 이루었고, 경제 호황기였던 1990년대엔 중산층 여성 관객을 겨냥한 1인극이 붐을 이루었다. 윤석화의 ‘목소리’나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 시절의 대표작이다.
최근의 1인극은 소재나 형식이 다양하다. 규모 있는 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스탠딩 코미디 같은 가벼운 형식이 있는가 하면 한 명의 배우가 수십 명의 등장인물을 구현하기도 하고 때론 양파 껍질 벗기듯 한 존재의 내밀한 기억과 아픔을 파고든다. 시야를 넓혀보면 이런 1인극 붐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2024년에 올리비에상을 받았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비롯해 ‘바냐’ ‘날씨소녀’ 등 여러 1인극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현상의 저변에 팬데믹의 경험이 작동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제작비의 절감은 물론이고 모든 관계가 두절된 채 혼자 모든 것을 감당했던 고립감, 알고 있던 과거와 결별하고 세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 말이다.
고대 연극은 테스피스라는 최초의 일인 배우에서 출발했다. 지금 현대연극은 관객과의 원초적이고 밀도 있는 만남을 통해, 새로운 연극적 만남을 모색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