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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마음 읽기] 이 여름, 창을 닫고 차단한 것들

중앙일보

2026.08.11 08:06 2026.08.1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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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소설가

천운영 소설가

밤에 창문을 활짝 열고 잤다. 이게 얼마 만인지. 이토록 선선한 바람이라니.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새벽녘 풀벌레 소리가 맑고 경쾌했다. 그러고 보니 밤낮 가리지 않고 귀를 후벼 파던 매미 소리가 잠잠했다. 길에 매미 사체들이 즐비하더라니. 그래서, 여름에도 끝이 있고, 가을은 오기 마련이라고 말하고 싶어졌나?

창과 문 꽁꽁 닫고 방안 시원하게
차 타고 나갈 때는 에어컨 최대로
시원한 나의 여름 언제까지 갈까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여름, 창을 닫고 차단한 것은 무엇이었나. 역대급의 살인적인 폭염. 새벽까지도 열기가 가시지 않던 후덥지근한 공기. 숨이 막혀 살이 녹아내려 머리 껍데기가 벗겨질 거 같아 어질어질 울렁울렁. 이놈에 망할 기후변화. 문과 창을 닫아걸고 문밖의 여름을 차단하라. ‘바깥은 여름’에서 ‘바깥만 여름’으로.

한낮에는 바깥출입을 자제하시오. 다행히 어디 나갈 일이 많지 않다. 다행히 방학이고 다행히 안에서 일해도 되는 직업을 가졌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약속을 잡지 않는다. 집안에만 있기 답답하면 인근의 카페를 찾는다.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웬만하면 나가지 말고 집에서 지내라 당부한다. 제발 돈 아깝다 말고 냉방기를 틀고 지내라, 냉방도 난방처럼 생존을 위해 필수인 시대다, 잔소리를 한다.

물을 많이 섭취하십시오. 물을 끓여 먹기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간편하게 생수를 배달시킨다. 하루에 2, 3리터를 마시니 일주일이면 번들로 두 개 정도. 많을수록 가격도 저렴해지므로 한 번에 넉넉하게 스물네 개. 밤에 주문하니 다음 날 정오쯤 문 앞에 도착. 생수통은 물론이고 손잡이까지 뜨겁다. 한 손에 여섯 병씩 적어도 두 번은 오르락내리락했을 터.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다행히 2층. 그 정도는 조금 덜 힘들 테니 미안함도 그만큼 덜어낸다. 그 와중에 물이 이리 뜨거운 상태로 유통이 되어도 괜찮나 의구심을 갖는다.

평소 왕복 한 시간 정도 거리는 걸어서 다니는 편이지만, 이런 여름엔 불가능한 일이다. 땀을 지나치게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단 몇 분 만에 옷이 다 젖어버릴 정도라, 어쩔 수 없이, 10분 거리도 차를 가지고 움직인다. 차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차량용 햇빛 가리개도 장만한다. 달구어진 차 시트는 앉는 순간 엉덩이가 델 정도로 뜨겁다. 에어컨을 최대로 올리고 달린다.

강 건너 유명한 콩국수 집에 간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서 다행히 기다리지 않고 식탁에 앉는다. 차가운 콩국이 들어가니 체온도 몇 도쯤 내려간 듯하다. 지하 주차장에 둔 차는 다행히 온도가 많이 오르지 않았다. 시원한 몸으로 시원한 차를 타고 돌아온다.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차 바깥 온도는 43도를 찍었지만, 차창 밖 풍경은 그저 청명할 뿐.

마트에서 장을 보지 않고 지내보기로 한다. 묵은김치며 냉동실에 묵혀둔 생선 건어물들을 요리해 먹는다. 매일 아침 먹는 계란은 방목란으로 정기 구독. 은박 보랭 박스에 아이스팩까지 신선하고 안전하게 배송. 냉장고 파먹기도 바닥을 보이고, 신선식품을 배달받기 위해, 새벽 배송 정기 구독을 재개한다. 다행히 구독료 3개월 무료 이벤트. 당분간은 새벽에 우유와 채소 등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택배 상자나 종량제봉투를 내놓을 때나 잠깐 문을 열고 나갈 뿐, 밖을 나가지 않아도 살아진다.

나의 여름은 이토록 안전하다.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여름이 더 가혹해져도, 창과 문을 모두 닫아걸고 시원함을 유지하면, 바깥과는 무관하게 안전하다. 한줄기 살랑바람에 이제 살만하다 여름을 잊을 만큼 알량하게 안전하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 이 안에서 안전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음을 내세워 다행히 얻은 내 안온한 여름 바깥에는 무엇이 있었나. 창밖의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은 언제부터 울고 있었나. 가을의 전령사로 때맞춰 울기 시작했다고? 그것은 경고음. 내가 차단하고 외면한 바깥의 처절한 신음 소리.

그것은 혹시 경고음이 아닌가? 내가 안전한 여름을 얻기 위해 외면하고 차단한 것들에 대해. 바깥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숨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견뎌낸 수많은 생명들의 비명을. 찬바람이 불고나서야 귀기울이는 이 알량한 양심에 대하여. 귀뚫어라 귀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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