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킹은 배구에서 가장 호쾌한 순간을 만드는 무기이자, 가장 정밀한 감각을 요하는 플레이다. 찰나의 순간 상대의 공격 속도와 궤적을 읽고, 정확한 타점에서 네트 너머로 손을 내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5~26시즌 V리그 남자부 블로킹 1위는 최고령 미들블로커 신영석(40·한국전력)이었다. 통산 1위(1414개) 타이틀 또한 그의 몫이다.
11일 오산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만난 신영석에게 블로킹 1위 비결을 묻자 기술이나 노하우 대신 아닌 “승부욕”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목마르다. 코트 위에서 더 잘하고 싶다”고 운을 뗀 그는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 후 V리그에 대거 들어온 이란 출신 수준급 미들블로커들과의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철저한 자기 관리도 한 몫을 한다. 신영석은 “매 순간 ‘더 잘 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껴야 한다”면서 “사실 2년 전쯤부터 신체 회복 속도가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배려 아래 훈련량을 조절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시즌 6라운드 때는 종아리도 올라오고 무릎도 안 좋은 상태에서 쥐어짜면서 하긴 했다. 권영민 감독님이 내 상황을 동료들에게 잘 설명해주셨다”고 했다.
경기 전 항상 먼저 나와 코트에서 서브 연습을 하는 신영석이다. 그는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서브가 안 된 날이 있었는데, (팀 동료였던)여오현 코치님이 ‘너 정도면 그런 건 안 나와야지’라고 했다. 나 자신이 용납되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좀 더 집중력을 높일까 고민하다 경기 전에 영점도 잡을 겸 연습을 하게 됐다”고 했다.
신영석의 별명은 ‘배구 대통령’이다. 현역 시절 ‘농구 대통령’이라 불린 허재 전 농구대표팀 감독을 빼닮은 외모 덕분에 영광스런 별명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팬들이 만들어주신 별명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국가대표 시절 선수촌에 있을 때 허 감독님과 마주 칠 때마다 느낌이 특별했다. (허 감독 아들인) 웅이와 훈이를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 시즌 블로킹 1위에 오른 한국전력 신영석(왼쪽). 사진 한국배구연맹
신영석의 소속팀 한국전력은 V리그 남녀부를 통틀어 유일하게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아 보지 못 했다. 지난 시즌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다 막바지에 부진해 봄 배구(포스트시즌) 문턱에서 멈춰 섰다. 승점 1점(세트스코어 2-3 패배)만 추가하면 되는 KB손해보험과의 최종전에서 0-3으로 완패를 당한 직후 신영석을 비롯한 여러 베테랑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했다.
신영석은 “평소 눈물이 없는 편인데, 팬들에게 약속한 ‘봄 배구’를 지키지 못한 자책감이 컸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쉽고 화가 난다”고 쓰린 기억을 되살렸다. 그는 “36경기를 준비하면서 봄 배구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달려왔는데 허무하게 날아갔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새 시즌 석진욱 감독 체제로 새출발하는 한국전력은 지난 시즌 맹활약한 샤론 버논 에반스(등록명 쇼)가 건재한 가운데, 파키스탄 국가대표 출신 우스만 파야드 알리와 프리에이전트(FA) 세터 이민규가 합류했다. 신영석은 “선수 이름값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팀을 받쳐주는 헌신이 모여 시너지를 내는 것”이라면서 “감독님께서도 기본기와 팀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신다. 공격을 이끌 쇼와 우스만이 마음껏 뛸 수 있게 돕겠다”고 말했다.
대표팀에선 호흡을 맞춰봤지만 같은 팀에선 처음 이민규와 함께 뛰게 된 신영석은 “지난 시즌에 사실 (하)승우 혼자로는 힘들다는 걸 느꼈다. 도와줄 수 있는 세터가 와서 좋다. 베테랑 세터니까 서로의 장단점을 잘 살리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2025~26 프로배구 V리그 올스타 팬 투표에서 남녀부 합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한국전력 미들블로커 신영석. [사진 KOVO]
해마다 등번호를 바꿔 온 그의 새 시즌 넘버는 26번이다. 지난해 번호(25)에 1을 더해 심기일전의 의지를 다진 그는 “더 이상 등번호는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뛴다는 각오만 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