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국경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대규모 이주민 유입과 안보 우려 속에 각국이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다. 비(非)유럽연합(EU) 여행객의 입국이 까다로워졌고,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해 군 병력을 투입하는 국가도 등장했다. 유럽 국가들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온 솅겐 체제 내에서도 국경 검문이 잇따라 부활하고 있다.
지난 4월 13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제1터미널의 루프트한자 출발 안내 전광판. EPA=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가 지난 4월 10일 도입한 전자입출국시스템(EES)으로 올여름 유럽 주요 공항의 입국 대기시간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EES는 영국을 비롯한 비EU 국가 국민이 EU에 처음 입국할 때 지문과 얼굴 사진, 개인정보를 등록하도록 하는 제도다. 누가 EU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전산으로 기록해 체류 기간을 넘긴 사람이나 범죄 수배자를 찾아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EU 국가에 처음 입국하는 사람의 경우 지문과 얼굴 사진 등을 현장에서 추가로 등록해야 해, 여행객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등록 창구 앞에 병목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새로운 제도인 만큼 기술·장비 문제가 잇따르기도 했다. 여행 데이터 분석업체 큐센서에 따르면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의 최대 대기시간은 지난해 60분에서 올해 120분으로, 뮌헨공항도 31분에서 60분으로 증가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은 80분에서 120분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일부 공항은 혼잡 시간대에 지문 채취를 생략하는 식으로 임시 대응하고 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 등 EU 8개국과 스위스는 오는 9월 종료되는 이 같은 임시 완화 조치를 연장해 달라고 EU 집행위원회에 요청한 상태다.
지난 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 경찰이 이탈리아발 여행객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주민들이 몰려오는 국경에서의 통제는 더욱 강경해졌다. 지난달 30일 모로코에서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로 약 7만2000명의 이주민이 육로와 바다를 통해 한꺼번에 넘어오자, 이탈리아는 지난 1일부터 스페인에서 항공·선박으로 들어오는 비EU 국적자를 대상으로 국경 검문을 재개했다. 이에 스페인도 8일부터 이탈리아발 여행객을 검문하고, 마드리드·바르셀로나 등 6개 주요 공항에서 약 200명의 신분증과 여권 등을 확인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이탈리아는 최소 15일까지, 스페인은 다음 달 7일까지 검문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일시적인 예외 조치라지만 유럽 곳곳에서 국경 검문이 잇따라 부활하면서 솅겐 체제의 핵심 원칙인 ‘자유로운 이동’도 흔들리고 있다. 1985년 체결된 솅겐 협정은 29개 가입국 간 상시적인 여권 검사와 국경 검문을 없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왔다. 다만 안보나 공공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한시적 검문을 허용하는데, 최근 이주민 유입을 이유로 이런 예외 조치가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아돌포 수아레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여행객들이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불로뉴쉬르메르 항구에서 구조된 이주민들이 프랑스 구조선 ‘민크(Minck)’에서 내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동쪽 국경에서는 군대까지 동원됐다. 최근 벨라루스에서 땅굴을 파고 국경을 넘은 15명을 적발한 라트비아 정부는 11일 벨라루스발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한 새 국경안보 작전인 ‘늑대인간(빌카티스)’을 시작했다. 늑대인간은 라트비아 민속에 등장하는 상징으로, ‘국경을 지키는 용맹함’을 상징한다. 라트비아 정부는 군 병력을 국경수비대 지원에 투입하고 드론과 헬기·항공기를 이용한 감시도 강화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이주민을 의도적으로 국경으로 보내는 ‘하이브리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지난 6월 8일(현지시간) 라트비아 로고브카에서 라트비아 국가방위군 장병들이 요격된 드론의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흐름을 두고 “안보 우선 접근법이 주류가 됐다(유로뉴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세우타 사태 이후 독일·덴마크·스웨덴·핀란드도 외부 국경 통제 강화를 요구했고, EU는 지난 6월 제3국에 ‘송환 허브’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등 이민 규정을 강화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중요한 지점에서 국경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면밀한 감시와 필요한 곳에서 물리적 장벽을 사용하는 것”을 대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