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독일 주가지수(DAX) 그래프가 띄워져 있다. REUTERS=연합뉴스
인공지능(AI) 랠리에서 소외됐던 유럽 증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쏠림에 대한 피로가 커진 가운데, 그동안 기술주 비중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유럽 증시가 업종 다변화와 실적을 갖춘 투자처로 재평가받는 모습이다.
11일(현지시간) 범유럽 지수인 STOXX 600은 660.52에 마감하며 7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 종가를 갈아치웠다. 독일 DAX와 프랑스 CAC40, 이탈리아 FTSE MIB 등 유럽 주요국 증시도 잇따라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증시의 반등 배경으로는 다변화된 업종 구성이 꼽힌다. AI와 반도체 관련주 비중이 높은 아시아 증시와 달리 유럽은 은행과 산업재, 소비재 등 내수 업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AI 랠리가 이어질 때는 기술주가 적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됐지만, 최근 반도체주 변동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분산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9일 “유럽의 은행과 산업재 등이 AI 시장의 급격한 변동 속에서 기술 투자 대안을 찾는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STOXX 600 은행지수는 올해 들어 21.31% 상승해 전체 지수 상승률(11.42%)을 크게 웃돌았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거래 수익이 늘어난 데다 고금리 환경 속 이자 수익까지 증가하며 실적을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유럽 증시가 AI 상승장에서 완전히 비켜선 것도 아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과 독일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 등 유럽 반도체주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데이터센터 수요 호조가 부각된 아일랜드 건축자재 기업 킹스팬은 최근 일주일 동안 주가가 17.5% 오르기도 했다.
실물경제와 기업 실적도 좋다. 유로존의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4% 증가해 1분기 0% 성장에서 반등했다. 시장에서는 STOXX 600 기업의 2분기 순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2%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금의 움직임도 뚜렷하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유럽 주식형 펀드에는 125억2000만 달러가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아시아 주식형 펀드로 들어온 81억5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반면 미국 주식형 펀드에서는 15억8000만 달러가 빠져나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지난달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유럽 주식을 기준보다 많이 담았다는 응답이 적게 담았다는 응답보다 2%포인트 우세했다. 지난 6월에는 유럽 주식을 기준보다 적게 담았다는 응답이 15%포인트 더 많았던 만큼 한 달 만에 투자심리가 반전된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유럽 증시 강세가 단기 순환매에 그치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씨티그룹의 베아타 만테이 유럽주식전략책임자는 “AI의 상승세가 다시 강해지더라도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기술주를 버리고 다른 업종으로 갈아타기보다 기술주를 계속 보유하면서 경기 민감주를 추가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것이고, 이는 유럽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