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6년 5월 그룹 경영진을 이끌고 바이브코딩을 배웠다. 사진 현대차그룹
“인공지능(AI)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맹신에 빠지지 말 것.”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최근 주요 경영진과 함께 ‘바이브 코딩’을 직접 배운 뒤 내놓은 피드백이다. AI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경영진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다. 바이브 코딩은 전문 개발자가 코드를 직접 짜는 대신, 일상 대화처럼 자연어로 원하는 기능을 설명하면 AI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은 1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AX(AI 전환) 성과 발표회’를 열고 2019년부터 추진해온 디지털 전환(DX)과 AX의 중간 성과를 공개했다.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은 “목표는 AI를 가장 많이 쓰는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AI 활용에는 경영진도 예외가 아니다. 정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은 최근 바이브 코딩 교육을 받았다. 내부에서 “회장까지 코딩을 배울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정 회장은 “직접 코딩해보고 싶다. 경영진이 직접 해봐야 AI 기술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자원했다고 진 사장은 전했다. 교육을 마친 정 회장은 AI를 맹신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정보통신기술)담당 사장이 12일 현대자동차 사옥에서 현대차그룹 AX(AI 전환)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사내 생성 AI 플랫폼 ‘H Chat Pro’를 일반 임직원에게 개방했다. 챗GPT·제미나이·클로드 등 외부 AI를 보안 환경에서 쓸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지난 7월 기준 현대차·기아 일반·연구직의 약 80%인 3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비개발자도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 업무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AI는 연구개발부터 제조·정비·고객 대응까지 파고들었다.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는 과거 충돌시험 결과와 이미지·해석 자료를 한꺼번에 검색해 관련 자료 탐색·검토 시간을 약 90% 줄였다. 글로벌 생산거점 약 70곳에서는 AI가 차량식별번호(VIN)를 읽어 전산상 차량과 실제 투입 차량이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이를 통해 연간 52억4000만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제조 현장의 ‘이포레스트:폴라리스’는 생산·품질·설비·물류 엔지니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 공정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 해외 정비 현장에선 차량 증상을 자연어로 입력하면 AI가 원인과 대응 방안을 찾아 정비 대응 시간을 약 42% 줄였다. 고객 리뷰도 AI가 분석·분류하고 답변 초안까지 작성한다. 건당 처리시간은 평균 35분에서 5분으로 줄었고 현재 리뷰의 85% 이상을 AI로 처리하고 있다.
빠른 확산만큼 잘 통제하는 것도 과제다. 진 사장은 “직원이 만든 AI 에이전트가 사내 문서 약 5000건을 삭제해 복구까지 2박3일 간 업무에 영향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도 AI 에이전트 통제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진 사장에 따르면 젠슨 황은 “우리도 카오스(chaos·혼란)”라며 “확인되지 않은 AI 에이전트는 폐쇄망에 가둬놓고 그 안에서만 동작하도록 우선 지켜본다”고 답했다.
앞으로 현대차그룹은 개별 업무를 개선하는 ‘바텀업’ AX에서 회사 차원의 핵심 과제를 푸는 ‘탑다운’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계획이다. 대표적인 과제는 차량 개발기간 단축이다. 진 사장은 “현대차그룹의 차량 개발기간이 중국 완성차 업체보다 긴 편”이라며 “각 단계의 기간을 어떻게 줄일지, 그 과정에서 생기는 리스크를 AI로 어떻게 풀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