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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자신도, 거꾸로 그린 화가…게오르그 바젤리츠 타계 후 첫 회고전

중앙일보

2026.08.1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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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새문안로 세화미술관에서 13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전의 마지막 장면. 오른쪽은 '그보다 더'(2026). 사진 세화미술관

서울 새문안로 세화미술관에서 13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전의 마지막 장면. 오른쪽은 '그보다 더'(2026). 사진 세화미술관

“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의 이야기로, 그러니까 거꾸로 뒤집힌 이미지 같은 것으로 세상에 내 뜻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휠체어에 앉은 88세 노화가가 말했다. 독일의 작업실에서 이 인터뷰를 하고 3주 뒤인 지난 4월 30일,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세상을 떴다. 미술관 관계자들이 전시 준비를 위해 찍어온 이 영상이 서울 새문안로 세화미술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세화미술관에서 상영중인 바젤리츠의 마지막 인터뷰. 지난 4월 초 독일 작업실에서 촬영 후 30일 타계했다. 권근영 기자

세화미술관에서 상영중인 바젤리츠의 마지막 인터뷰. 지난 4월 초 독일 작업실에서 촬영 후 30일 타계했다. 권근영 기자

작가 사후 첫 미술관 회고전이 된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13일 개막한다. 큰아들 다니엘의 4살 생일을 축하하며 그린 초기작 '나뉜 소 두 마리'(1966)부터 유작 '그보다 더'(2026)까지 46점의 회화·드로잉·조각이 출품됐다. 이 미술관 소장품만 10점, 39점은 국내 첫 공개다.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으로 이름난 건물 밖에도 높이 3.6m의 자각상(自刻像) ‘1965’가 놓였다.
1936년 동독 도이치바젤리츠에서 태어난 한스 게오르그 케른은 동베를린 미술아카데미 학생이던 1957년 '정치적 미성숙'을 이유로 탄광에 교화 노동을 갈 처지가 됐다. 피카소의 작품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이에 서베를린으로 망명, 미술공부를 이어갔다. 고향을 기리는 의미로 바젤리츠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1969년부터 캔버스를 거꾸로 놓고 그림을 그렸다.
미술관 건물 앞에 설치된 바젤리츠의 자각상 '1965'. 29세 때의 자신을 생각하며 2024년 나무로 깎은 뒤 청동으로 주조했다. 사진 세화미술관

미술관 건물 앞에 설치된 바젤리츠의 자각상 '1965'. 29세 때의 자신을 생각하며 2024년 나무로 깎은 뒤 청동으로 주조했다. 사진 세화미술관

타계 3주 전의 인터뷰에서 그는 "기존의 규칙을 타파하려고 보니 상하좌우의 방향성이라는 게 자의적일 뿐이라 생각하게 됐다. 풍경을 찍은 사진을 거꾸로 놓고 그리기 시작했더니 반향이 일었다"고 돌아봤다.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독일, 그리고 독일인이란 사실"이라던 바젤리츠의 대표작은 거꾸로 그린 독수리. 독일을 상징하는 독수리를 추락하듯 그리며 전범국으로서의 자국의 역사를 직시했다. 평생토록 아내 엘케와 자신의 모습도 거꾸로 그리며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을 겸허히 마주했다. 바닥에 캔버스를 펼치고 그린 노년의 몸에는 휠체어 바퀴 자국이 고스란히 남았다.
‘프랑스에서의 엘케Ⅱ’(2019). 바젤리츠는 평생 아내와 자신의 몸을 거꾸로 그렸다. 사진 세화미술관

‘프랑스에서의 엘케Ⅱ’(2019). 바젤리츠는 평생 아내와 자신의 몸을 거꾸로 그렸다. 사진 세화미술관

독일 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 조르조 치니 재단에서 열리는 2026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선 그의 대형 회화 한 점이 21억2000만원에 팔렸다. 이번 전시의 보험평가액은 1500억원 가량. 전시와 별개로 1층 로비에는 거꾸로 그린 작가의 누드 자화상 ‘재발(Rückfall)’이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나란히 걸렸다.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으로 꼽히는 두 화가는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대표 작가로 함께 전시하기도 했다.
아내 엘케가 1966년 찍은 바젤리츠. 사진 세화미술관

아내 엘케가 1966년 찍은 바젤리츠. 사진 세화미술관

한국 전시를 앞두고 바젤리츠는 "한국인들이 내 작업에 놀라거나 흥미를 느낄지 무척 궁금하다”며 “내 작업이 아시아 문화와는 꽤 거리가 있을 텐데, 어찌 보면 멀면 멀수록 더 좋은 법”이라고 말했다. 세화미술관 안미희 관장은 “더 크고, 더 공격적으로 그리고자 한 바젤리츠 회화의 압도감을 살리기 위해 미술관 2층 천장을 노출해 층고를 높였다”며 “작가 생전에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유작전이 됐다”고 말했다. 12월 27일까지, 성인 1만5000원.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도 9월 1일부터 11월 14일까지 생애 후반기 10년간 그린 작품들로 전시를 꾸린다.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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