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양과 모습에 따라 비를 칭하는 말도 여러 가지다. 순우리말로는 이슬비·보슬비·단비·소나기 등이 있고, 한자어로는 오락가락 조금씩 내리는 미우(微雨), 빗줄기가 가는 세우(細雨), 때맞게 내리는 시우(時雨), 가뭄 끝에 달게 내리는 감우(甘雨), 사납게 내리는 폭우(暴雨), 갑자기 내리는 취우(驟雨) 등이 있다. 바람 풍(風)이 붙은 풍우(風雨)는 몰려오는 기세가 있고, 폭풍우는 가장 험하고 사나운 비다. 이처럼 다양한 비는 사람의 인상이나 형세에도 많이 비유된다. 이슬비나 보슬비처럼 촉촉한 사람, 감우처럼 반가운 사람….
去:갈 거, 似:같을 사, 微:작을 미, 塵:먼지 진. 올 때는 바람비 같은 기세이더니 갈 때는 실 먼지처럼 스러지네. 33x72㎝.
휩쓰는 바람과 함께 내리는 풍우는 한창 기세가 오른 사람을 연상하게 한다. 기세가 오른 터에 아첨하는 사람까지 모여들면 기세가 더욱 등등해진다. 이런 상황을 ‘래시풍우(來時風雨)’ 즉 ‘몰려옴이 바람비 같다’고 표현한다. 가장 좋을 때이면서 한편으론 가장 조심해야 할 때다. 왔던 것은 언젠가는 먼지처럼 스러지기 때문이다. 스러지면서 다 스러지지 못해 찌꺼기를 남긴다면 그게 바로 오점이다. 바람비의 위세로도 다 씻어내지 못하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 오점이 남는다.
가수 조용필이 노래 불렀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좋은 노랫말이다. 사람은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리고 역사는 사람을 향해, 기세 좋게 다가온 바람비가 싣고 온 먼지는 마지막 하나까지 남기지 말고 자신마저 먼지가 되어 그 바람에 날려 깨끗하게 떠나라고 가르친다. 내가 남긴 더러운 먼지의 오점은 후손에게 오래도록 오명을 씌운다. 한때 ‘쏴’하고 지나가는 풍우를 탐해 즐기기보다는 오랫동안 가랑비에 촉촉이 젖는 삶이 훨씬 행복하리라. 모두에게 때맞춰 알맞게 내리는 시우(時雨)와 같은 삶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