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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스페인 이민자 사태가 한국에 주는 교훈

중앙일보

2026.08.12 08:18 2026.08.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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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한국스페인어문학회 회장

임호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한국스페인어문학회 회장

최근 약 3주간 학생들을 인솔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사회·문화·예술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하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돌아왔다. 다채로운 현지 특강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주제는 이민자 문제였다. 스페인은 이민자 출신이 전체 인구(4944만 명)의 약 20%인 10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이민자 비중이 큰 국가다.

선거 앞두고 불법 이민 양성화
일시에 난민 6만명 밀입국 쇼크
신중한 접근, 고도의 전략 필요

프로그램 참여 학생들이 이민자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이유는 스페인이 직면한 현실이 한국의 상황과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한국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2025년 합계출산율 1.1명을 기록한 유럽 최저 수준의 저출산 국가다. 현지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청년 실업과 높은 주거 비용을 저출산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집값이 치솟다 보니 청년들의 독립과 혼인이 늦어지고, 이것이 고스란히 출산율 저하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저출산 문제가 한국에도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스페인에서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까닭은 저출산 현상의 장기화로 인구 고령화가 더욱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고령층의 연금 의존도가 높은 스페인에서 고령화는 곧 연금재원 고갈이라는 국가적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최근 연금 개혁을 단행해 65세이던 연금 수령 연령을 67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저출산, 고령화, 연금 고갈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스페인이 꺼내 든 타개책이 바로 적극적인 이민자 수용이었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은 다른 문화권과 공존해 온 경험이 있다. 중세에 700년 이상 이어진 이슬람 세력의 정착과 유대인의 유입이 그 방증이다. 이후 1492년까지 기독교 중심의 ‘영토 회복 전쟁’ 즉, 레콩키스타(Reconquista) 과정에서 종교적 순혈주의에 빠져 이슬람과 유대인을 추방하는 바람에 역사적 쇠퇴기를 겪었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은 오히려 21세기에 스페인이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인 이민 포용 국가로 탈바꿈하는 자양분이 됐다.

실제로 그 효과는 뚜렷했다. 2010년대 초반 경제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던 스페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로존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유럽연합(EU) 경제를 견인하는 모범 국가로 거듭났다. 경제가 순항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 육체노동 시장의 공백을 메워준 대규모 이민자들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민자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에는 명확한 양면성이 존재한다. 역사·언어·종교적 뿌리를 공유하는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스페인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에 문화적 배경이 이질적인 지역 출신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렇다고 출신 국가를 기준으로 이민을 제한하는 것은 국제인권 규범에 어긋나기에 스페인 사회는 깊은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처럼 이민 정책은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기에 고도의 전략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런데 최근 집권 사회노동당 정부는 2025년 12월 31일 이전에 입국해 5개월 이상 체류한 약 50만 명의 미등록 불법 이민자에게 거주 및 취업 자격을 부여하는 대규모 양성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말 모로코와 접경한 스페인 자치령 세우타에 하루에만 5만~6만 명의 아프리카 난민이 밀입국하는 사태를 촉발했다.

솅겐 조약으로 국경 이동이 자유로운 EU의 특성 때문에 이번 사태는 스페인을 넘어 유럽 전체의 골칫거리로 비화하고 있다. 스페인 집권당이 이런 민감한 문제를 이토록 성급하게 추진한 배경에는 다가올 총선에서 이민자 문제를 쟁점으로 띄워 진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한민국 입장에서 이민자 유입을 통해 경제 반등을 이뤄낸 스페인 사례는 분명 희소식일 수 있다. 동시에 치밀한 사회적 합의와 정교한 통합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지 않은 무분별한 이민 정책이 얼마나 큰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은 스페인 사례를 철저히 연구해 사회적 숙의를 거쳐 신중하게 이민자 수용 및 사회통합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호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한국스페인어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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