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부산 세계도서관정보대회가 열린 부산 벡스코 제1전시관에서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이 그동안 시행한 독서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영화 기생충은 계층 간의 삶의 격차를 잘 보여준다.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는 디지털 세상에만 갇혀버린 저소득층과 디지털은 물론이고 미술과 인디언 놀이 등 오프라인에서 풍부한 체험을 하는 상류계층 간의 격차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인공지능(AI)시대에는 이런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다채로운 체험과 교류를 하는 인간이 더 성공할 수밖에 없고 그런 영감과 통찰을 키우는 아날로그 감수성의 공간을 도서관이 제공해야 한다.”
지난 1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6 부산 세계도서관정보대회’에서 만난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의 말이다.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대회는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이 해마다 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 관련 국제회의로 일명 ‘도서관 올림픽’이라 불린다. 한국에선 2006년 서울 대회 이후 20년 만에 부산에서 열렸다.
'2026 부산 세계도서관정보대회'(WLIC) 전시행사가 열린 10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북적이고 있다. 송봉근 객원기자
올해 행사의 주제는 ‘변화를 이끄는 도서관’이다. AI 시대의 도서관 등 미래 도서관의 역할을 논의하는 180여개 전문 강연과 학술 세션이 진행됐다. 또 대회 기간 전후로 서울과 부산의 주요 도서관 10개 기관에서 '도서관과 AI, 문화유산 보존, 녹색 전환' 등을 주제로 전 세계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12개 위성회의도 열렸는데 이번 대회를 주관한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을 맡은 오 관장이 ‘AI시대 도서관의 역할’과 관련한 기조연설 등을 해 큰 호응을 얻었다.
오 관장이 있는 서울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야외도서관’ 개념을 도입해 서울광장(2022년), 광화문광장(2023), 청계천(2024년) 등 도심 속에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독서 저변을 넓혔다. 이런 시도는 부산 바다도서관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경기도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처럼 직접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기후위기, 돌봄, 자원순환 등 지역 의제를 다루는 공론장을 운영하며 지역혁신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야외도서관 '책 읽는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으며 독서와 휴식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월 23일 청계천변을 찾아 서울야외도서관 '책읽는 맑은냇가' 독서공간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서울도서관은 2025년부터는 전국 최초로 공공 독서클럽인 ‘힙독(힙하다+독서)클럽’을 운영하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힙독은 온라인에서 수백명이 조를 이뤄 『코스모스』 등 특정 책을 정해 독서나 토론을 하거나 작가와의 북토크, 혹은 평창 메밀밭 등 지역 명소를 찾아가 책을 읽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는 독서모임이다.
특히 지난해 ‘힙독 클럽’은 1만명 회원 모집이 2시간 만에 마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더 놀라운 것은 가입자의 81.6% 가 디지털 세대로 불리는 엠제트(MZ)였다는 점이다. 책보다 유튜브 등 영상매체에 더 많이 노출된 젊은 층이 독서 활동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경은 뭘까.
지난 6월 14일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서 열린 '부산바다도서관' 행사에서 시민과 관광객이 책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오관장은 “MZ세대들 사이에 독서는 ‘멋지고 트렌디한 활동'이라는 이미지가 확산하면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힙하게 소비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며 “휴대폰을 손에 쥐고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디지털 문화에 빠져 있는 이런 세대에게 책이나 오프라인 공간은 오히려 자신들이 처음 접해보는 아날로그 문화라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 관장은 대회 기간 온·오프라인에서 서울도서관 등이 선도한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미래 도서관은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공간’, ‘아날로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다양한 주제와 문제를 다루는 민주주의 토론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 부스의 모습. 이 도서관은 시민을 직접 찾아가 지역의제를 다루는 '야외도서관'을 운영해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위성욱 기자
이번 대회에는 120여 개국에서 3000명 이상의 전 세계 도서관과 관련 정보 분야 전문가들이 왔다. 이들은 강연과 학술섹션 외에도 벡스코 내부 전시장에 설치된 부스에서 국내·외 도서관 운영 선진 사례를 둘러보거나 경험을 공유했다. 또 부산 지역 33개 도서관과 서울·수원·파주 등 수도권 주요 7개 도서관 등 총 40개 도서관을 방문하는 문화탐방 프로그램도 참여했다.
이진우 한국도서관협회장은 “과거 도서관이 조용한 실내에서 책을 읽는 공간이었다면 최근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는 야외도서관(아웃도어 라이브러리)으로 진화 중”이라며 “이번 대회는 한국도서관의 다양한 성공 사례를 보여주며 세계 도서관이 AI시대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