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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세 20억도 안 아깝다? 3년 만에 뜬 ‘하루키 로또’ 쟁탈전

중앙일보

2026.08.12 13:00 2026.08.1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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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무라카미 하루키. AP=연합뉴스

2021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무라카미 하루키. AP=연합뉴스

국내 출판사들이 들썩이는 몇 가지 순간이 있다. 그중 하나가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이 나온 직후다. 한국 출판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3일 하루키의 16번째 장편소설 『가호(夏帆)』가 일본에서 출간된 뒤에도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가호』는 그림책 작가인 주인공 가호가 처음 만난 남자로부터 외모 비하 발언을 들은 뒤 겪는 기묘한 이야기를 다룬다. 하루키 장편 소설 중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 주인공인 작품이다. 출간일 0시에 책을 사기 위해 서점 앞에 긴 줄을 설 정도로 일본 내에서도 관심이 컸다. 일본 내에선 이미 30만부를 찍었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가호』의 한국 판권 경쟁 입찰이 11일 마감됐다. 하루키의 전작(前作)을 냈던 문학동네·민음사·비채(김영사의 문학 브랜드)·문학사상을 비롯해 10곳 넘는 출판사가 입찰에 참여했다는 얘기가 출판업계에서 나온다. 하루키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사카이 에이전시가 입찰을 주관한다. 출판사들은 선인세 입찰가뿐 아니라 마케팅 방식 등도 같이 제출한다고 한다. 한 출판사 대표는 12일 “입찰가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출판사에 대한 신뢰, 홍보 예산 등을 전반적으로 보고 하루키가 최종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2023년 내놓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그해 9월 6일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된 모습. 연합뉴스

무라카미 하루키가 2023년 내놓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그해 9월 6일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된 모습. 연합뉴스

그럼에도 선인세 입찰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업계 내 이견은 없다. 직전 작품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2023)의 선인세는 1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출판 시장 불황, 원·엔 환율 하락, 전작보다 덜한 일본 내 인기 등의 영향으로 입찰가가 하락할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업계에선 이번에도 10억~20억원 사이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인세 20억원이면 20만부 판매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다만 마케팅비가 더해지면 분기점은 30만부 이상으로 높아진다.

하루키 책의 선인세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1000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억대로 올랐고, 『해변의 카프카』(2003) 출간 때는 5억원 내외까지 상승했다. 높은 선인세에도 불구하고 『해변의 카프카』는 국내에서 80만부 이상 팔리면서 출판사인 문학사상은 큰 수익을 냈다. 출판 업계에선 ‘하루키 복권’이라는 말이 생겼다. 판권만 확보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 사카이 에이전시도 판권 판매 방식을 바꿨다. 이전까진 주로 문학사상에서 책을 냈지만, 공개 경쟁 입찰을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이 『1Q84』(2009)였다. 문학동네가 판권을 샀는데, 선인세 계약금이 8000만 엔(당시 환율로 약 10억원) 정도였다고 한다. 3권으로 된 『1Q84』가 국내에서 200만 부 이상 판매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민음사에서 펴낸 후속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는 선인세가 15억원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후 작품도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2000년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2000년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국내 정식 출간된 2017년 7월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국내 정식 출간된 2017년 7월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판권 경쟁 과열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한 출판 에이전시 대표는 “영미권, 유럽 출판사들은 주로 전작을 냈던 출판사에 우선협상권을 주고 판권 계약을 한다”며 “공개 입찰 경쟁은 선인세를 높이려는 일본 에이전시들의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요즘 출판 시장을 고려하면 선인세 20억원 줘선 이익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중소 출판사 관계자는 “높은 선인세를 낼 수 있는 대형출판사들만의 잔치”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생 출판사가 가장 높은 입찰가를 낸다고 하더라도 사카이 에이전시가 그 액수로 결국 대형출판사와 계약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하루키가 최근 책을 냈던 대형 출판사 문학동네, 민음사, 비채 중 한 곳과 최종적으로 『가호』 출간 계약을 할 것으로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윤성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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