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밀든홀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 트럼프는 다시 신형 에어포스원으로 갈아타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변 위협을 피하기 위해 에어포스원을 비밀리에 바꿔 탄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 ‘공식적인 기만의 충격적인 사례(a stunning episode of official deception)’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의 행적과 소재를 감추기 위해 벌여온 기만에 비하면 ‘어린아이 장난(this is child’s play)’ 수준이라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 비행과 푸틴 대통령의 극단적인 보안·비밀주의를 비교했다. 러시아 탐사보도 매체 프로엑트의 부편집장 미하일 루빈은 트럼프 대통령의 작전에 대해 “러시아와 비교하면 어린아이 장난”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망명 언론인 파리다 루스타모바는 푸틴 대통령의 소재를 둘러싼 당국의 기만을 두고 “그저 평범한 화요일”이라고 표현했다.
푸틴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하는 러시아 기자들은 집무실에 놓인 화분의 상태까지 살핀다. 푸틴 대통령의 회동 영상에서 시들었던 잎이 다시 생생해지는 등 식물의 상태가 시간 순서와 맞지 않으면 크렘린이 발표한 날짜와 실제 회동 시점이 다를 가능성을 추정하는 식이다.
푸틴 대통령은 여러 관저에 외관이 거의 똑같은 집무실을 만들어 실제 위치를 감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유럽라디오(RFE/RL)는 지난해 문손잡이 위치와 벽면 이음새 등 미세한 차이를 분석해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집무실이 사실상 같은 모습으로 꾸며졌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가 지난달 크렘린궁 집무실에서 촬영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모습. 푸틴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극도의 비밀주의 탓에 기자들은 집무실에 놓인 화분의 시든 정도를 살펴 그의 활동을 추적하기도 한다. 사진 스푸트니크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은 촬영 후 수주가 지나서 공개되기도 한다. 러시아 당국자들은 영상이 공개될 때까지 회동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고, 공개된 뒤에는 마치 당일 회동한 것처럼 행동한다. 러시아 기자들은 이런 영상을 러시아어로 ‘통조림’을 뜻하는 ‘콘세르비(konservy)’라고 부른다. 영상 속 참석자가 이미 지난 사건을 언급하거나 당시와 맞지 않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동 경로를 감추기 위한 수단도 동원된다. 푸틴 대통령은 일반 여객열차처럼 꾸민 비밀 장갑열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열차에는 체육관과 스파, 특수 통신장비 등이 갖춰진 것으로 전해졌다. 관저 주변에는 지도나 시간표에 나타나지 않는 철도 지선과 비밀 역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열차 집무실. 사진 모스코 타임스 캡처
푸틴 대통령의 보안 집착은 코로나19팬데믹 이후 더욱 강해졌다. 당시 그를 만나려는 정부 관계자들은 2주간 격리해야 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 영토 깊숙이 날아들면서 푸틴 대통령의 이동과 소재를 감추려는 조치가 한층 강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모스크바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차량 행렬조차 실제로는 미끼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NYT는 푸틴 대통령의 비밀주의가 신변 보호를 넘어 통제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행적을 감추고 공개 시점을 조절하면서 푸틴이 언제 어디서나 국정을 챙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