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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 쏟아 캐냈다…울산 한복판 ‘日비밀동굴’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2026.08.13 13:00 2026.08.1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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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동굴피아 개장전 당시 모습. 암반을 파내고 만든 예전 인공동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 울산 남구

태화강 동굴피아 개장전 당시 모습. 암반을 파내고 만든 예전 인공동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 울산 남구

태화강 동굴피아 개장전 당시 모습. 암반을 파내고 만든 예전 인공동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 울산 남구

태화강 동굴피아 개장전 당시 모습. 암반을 파내고 만든 예전 인공동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 울산 남구

울산 도심 태화강변을 걷다 보면 남산 자락에서 예상치 못한 동굴을 만난다. ‘태화강 동굴피아’라는 간판이 내걸린 인공동굴이다. 내부에는 미디어아트, 디지털 체험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편이어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울산의 명소다.

하지만 시간을 80여 년 전으로 돌리면 이곳의 모습은 전혀 달라진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보관하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해 암반을 파 만든 군사용 인공동굴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거둬들인 쌀과 놋그릇부터 송탄유(소나무에서 짜낸 연료)까지 각종 물자를 보관했던 수탈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동굴피아라는 이름의 체험시설이 됐지만,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울산 한복판에 남아 있는 일본군 비밀 동굴의 ‘불편한 역사’와 의미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체험시설로 바뀐 현재의 태화강 동굴피아 입구. 사진 울산 남구

체험시설로 바뀐 현재의 태화강 동굴피아 입구. 사진 울산 남구


울산 남구 등에 따르면 태화강 동굴피아는 남산 자락에 남아 있던 일제강점기 인공동굴 4곳을 정비해 2017년 문을 연 문화시설이다. 남구가 150억원을 들여 조성했다. 동굴 길이는 각각 16~62m로, 가장 긴 곳은 60m가 넘는다.

동굴은 1940년대 만들어졌다. 당시 울산 남구 삼산동에는 민간 비행장이 있었는데 1942년 군용 비행장으로 전환됐다. 일본군은 비행장 인근 남산 자락의 암반을 파 군수물자 등을 보관하기 위한 동굴을 만들었다.

굴착 작업에는 주민들이 동원됐다. 어린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암반을 파냈고, 완성된 동굴은 일본군의 물자 보관시설로 사용됐다. 동굴에는 주민들에게서 거둬들인 쌀 등 농작물이 쌓였다.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 제기로 사용하던 놋그릇을 빼앗아 옮겼고, 젊은 여성의 긴 머리카락과 비녀까지 동굴에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일본군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주민들의 삶은 궁핍해졌다. 먹을 것이 부족해 장생포 바닷가에서 떠밀려온 수초를 주워 말려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는 이야기도 지역에 남아 있다.

1945년 광복을 맞자 주민들은 소를 몰고 이 동굴을 찾았다. 일본군이 보관해 놓은 쌀 등을 챙겨와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동굴 문을 열자 안에는 곡식이 가득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전쟁 장기화로 석유 부족에 시달렸다. 그래서 송탄유를 생산하는 데 나섰고, 이 작업에 주민과 어린 학생 등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동굴피아에는 ‘송탄유’ 드럼통 모형이 전시돼 있다.
태화강 동굴피아 1동굴. 내부에는 일제강점기 수탈과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사진 울산 남구

태화강 동굴피아 1동굴. 내부에는 일제강점기 수탈과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사진 울산 남구


광복 이후 동굴은 오랫동안 방치됐다. 집 없는 사람들의 임시 거처가 되기도 했고 굿당이나 불법 간이주점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과 수탈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이었지만 체계적인 보존이나 역사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역사회에서 동굴을 역사교육 자료로 보존·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구는 2013년부터 정비계획을 세웠고, 2017년 4개 인공동굴을 중심으로 태화강 동굴피아를 개장했다. 개장 첫해인 2017년 17만6000명이 찾았다. 2023년 16만6000명, 2024년에는 18만6000명이 방문했다. 지난해에는 14만6000명이 찾았고 올해도 6월까지 6만명이 다녀갔다. 동굴피아 관계자는 “광복절이 있는 8월에는 평소보다 방문객이 늘어난 편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동굴이 품은 역사에 비해 관련 전시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4개 동굴 가운데 일제강점기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곳은 길이 60m가량의 1동굴뿐이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동굴과 관련한 조형물과 사용된 장비, 수탈과 강제동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물 등이 설치돼 있다. 나머지 2~4동굴은 디지털 아쿠아리움과 곤충체험관 등 체험시설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초등학생 딸과 동굴피아를 찾은 이모(42)씨는 “일제강점기 역사를 소개하는 곳이 1동굴뿐이고 전시 내용도 많지 않았다”며 “아이에게 이곳의 아픈 역사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남구 관계자는 “동굴피아가 강제동원과 수탈의 역사를 알리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전시와 콘텐트를 보완하는 방안을 찾고 동굴 내부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김윤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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