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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아이돌이 애국가, 日엔 한국인 북적…‘노재팬’ 사라진 광복절

중앙일보

2026.08.14 00:08 2026.08.14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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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오후 일본 도쿄의 대표적 관광지 아사쿠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유성운 특파원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오후 일본 도쿄의 대표적 관광지 아사쿠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유성운 특파원

“OO야. 거기 아니고, 이쪽이쪽~”
14일 오후 도쿄의 유명 관광지 아카사카. 30대 여성 서너 명이 손을 흔들며 일행을 불러 세웠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이날 아사쿠사는 한국인들로 붐볐다. 식당, 카페, 상점에서도 한국말이 끊이지 않았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대형마트 매대에서 일본 맥주를 치우던 2019년 ‘노재팬’의 여름과는 180도 달라진 풍경이다. 일본인 아이돌이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에는 박수가 쏟아지고, 일본 맥주 수입량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도쿄로 오는 하네다·나리타 공항은 한국 관광객들로 연일 붐빈다.

작은 발언으로도 ‘반일’로 쉽게 점화되던 한국 사회는 옛말이 됐다. 외교·역사 갈등이 일본 여행과 상품, 일본인 개인에 대한 거부로 곧장 번지던 모습은 뚜렷하게 약해졌다. 7년이 지난 2026년 여름, 한국인이 일본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日 미나미

“동해물과 백두산이….”
지난 6월 25일 한국 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월드컵 경기에 앞서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네이버 생중계의 ‘같이보기’를 진행 중이던 걸그룹 리센느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본인 멤버 미나미도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한 표정으로 따라 불렀다. 댓글창엔 호의적인 반응으로 빠르게 채워졌다.

리센느의 원이가 일본 ‘갸루’ 분장을 하고 일본인 멤버 미나미에게 일본어를 배우는 영상이 인기를 끌었고, 미나미가 원이의 고향을 가리켜 “거제 야호”라고 외치는 장면은 밈으로 확산됐다.
원이(왼쪽)가 갸루 분장을 하고 일본인 멤버 미나미와 일본어를 배우는 영상. 미나미가 원이의 고향에 대고 '거제 야호'라고 외친 이 장면은 밈이 됐다. 사진 안원잘부 유튜브

원이(왼쪽)가 갸루 분장을 하고 일본인 멤버 미나미와 일본어를 배우는 영상. 미나미가 원이의 고향에 대고 '거제 야호'라고 외친 이 장면은 밈이 됐다. 사진 안원잘부 유튜브

7년 전 일본인 K팝 멤버를 바라보던 시선은 훨씬 날카로웠다. 2019년 4월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는 팀 공식 인스타그램에 일본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는 데 대한 소회를 남겼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개인적인 감상까지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논쟁은 며칠간 이어졌고, 사나는 이후 “두렵고 무서웠다”는 취지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대중의 정서가 크게 작용하는 연예계와 프로스포츠에서는 변화가 더 빠르다.

K팝에서 일본인 멤버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트와이스의 미나·사나·모모, 르세라핌의 사쿠라·카즈하에 이어 베이비몬스터의 루카·아사, 아일릿의 모카·이로하, 이즈나의 코코 등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다. 일본인 멤버는 일본 팬과의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가장 큰 마켓인 일본 시장의 현지 활동을 이끄는 핵심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한때 양국의 감정 때문에 ‘리스크’로 다뤄지기도 했지만, 이젠 일본인 멤버를 받아들여 K팝식 육성 체계를 이식하는 전략이 업계 표준이 됐다.

YG 걸그룹 베이비몬스터. 사진 YG엔터테인먼트

YG 걸그룹 베이비몬스터.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여자 프로배구 코트에는 일본인 전성시대가 열렸다. ‘배구여제’ 김연경이 뛰어 팬덤이 강하기로 유명한 흥국생명 스파이더스는 요시하라 도모코 감독이 지휘하고, 자스티스 야치가 선수로 뛴다. IBK기업은행도 새 시즌을 앞두고 일본 국가대표 감독 출신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과 일본인 아웃사이드 히터 오사나이 미와코를 영입했다. 서포터들의 지지가 중요한 프로스포츠에서도 일본이라는 국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 좋다 54.3%, 역대 최고치

일본 관련 2019년과 2026년 비교

일본 관련 2019년과 2026년 비교

숫자가 가장 선명하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2025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945만96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재팬’이 시작된 2019년(558만4600명)보다 69.4% 늘었고, 전체 방일 외국인의 22%를 차지해 국가·지역별 1위에 올랐다. 2026년 상반기에도 567만5100명이 방문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6% 증가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 집계에서 일본 맥주 수입량은 2025년 10만322t으로 사상 처음 10만t을 넘었고, 전체 수입 맥주의 41.7%가 일본산이었다. 불매운동과 코로나19 여파로 한때 매출이 6000억원대까지 떨어졌던 유니클로도 다시 ‘1조원 클럽’에 안착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국제문화회관이 지난달 한·일 국민 30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에서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한국인은 54.3%로 나타났다.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최고치다. 한·일 갈등이 정점에 달했던 2020년 12.3%와 비교하면 6년 만에 42%포인트 뛰었다. 반면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상은 같은 기간 71.6%에서 38.5%로 떨어졌다.

한국을 즐기는 일상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14일 오전 한국 음식점이 밀집한 신오쿠보는 젊은 일본인들로 붐볐다. 한국식 낙지볶음과 보쌈을 파는 음식점에선 30분 이상 대기해야 했다.
얼마 전 종영된 니혼테레비 드라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10回切って倒れない木はない)’서 주인공 ‘김민석’ 역을 맡은 일본 배우 시손 준(志尊淳)은 어렸을 때 한국에 재벌에 입양됐다는 설정으로 한국어 연기를 해 화제가 됐다.
TV 유명 광고에는 “괜찮아”나 “찌개~”라는 한국어가 등장하고, 시중에 판매되는 과자나 라면에는 한글 포장이 그대로 진열되고 있다. 일본 아이돌이 등장하는 예능 방송에 한국 여행이나 음식을 다루는 경우도 흔해졌다.
2025년 일본인 방한객은 365만명을 기록해 종전 최고였던 2012년의 352만명을 넘어선 역대 최대였다.



‘과거사’는 남았지만, 일상은 별개

증조부 '친일파' 논란으로 최근 사과한 배우 하영. 뉴스1

증조부 '친일파' 논란으로 최근 사과한 배우 하영. 뉴스1

그렇다고 독도 영토 표기와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과거사’ 등의 민감한 문제가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다.

최근 배우 하영 증조부의 ‘친일파’ 논란이 대표적이다. 다만 과거처럼 비판만 일방적으로 확산하지는 않았다. 역사학자 심용환은 소셜미디어(SNS)에 “특정 단체 참여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논란을 만드는 관성은 남았지만, 역사적 근거와 책임의 범위를 따지는 반론 역시 힘을 얻은 것이다.

이날 아사쿠사에서 만난 20대 커플은 ‘왜 일본으로 왔냐’는 질문에 “‘체인소맨’(일본 애니메이션) 굿즈도 사야하고, 짧은 연휴에 일본만큼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해외가 있냐”고 반문했다. 역사 문제와 일상의 교류를 별개로 두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일부 정치인이 부추기는 ‘반일’이 더 이상 대중의 선택을 지배하지는 못하는 시대. 그것이 2019년과 2026년, 두 여름의 가장 큰 차이다.

2026년 아사쿠사의 여름 풍경은 ‘뉴 노멀’이 되어가고 있다.



유성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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