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14일 X(옛 트위터)에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 또는 4년 연임제로 변경하여 중간평가를 통한 책임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며, 지방자치와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헌하자는 것이 저의 공약이자 지금까지 일관된 입장”이라며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 단축이 필요하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2022년 대선 당시 저의 공식입장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썼다.
이 대통령은 또 “5·18 정신과 부마항쟁을 헌법 전문에 명기하고, 제왕적이라고까지 평가되는 대통령 권한 중 일부, 즉 감사원 관할권이나 총리 추천권, 인사권 일부 등을 국회에 넘기는 등으로 대통령 권한과 의회 권한을 조정하자”고 했다. 이어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국민여론에 비추어 가능하지도 않다. 대통령 권한을 국회 등으로 일부 분산하자는 것이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라는 것은 잘못된 이해”라며 “실제 개헌한다면 그 구체적 내용은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었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가 가진 문제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같은 취지로 설명한 지 7시간 45분 만에 직접 개헌 관련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정책 대전환을 위한 청년정책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헌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진 발단은 지난달 초 이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한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전날 김 의원은 이 대통령과 골프 회동에서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필요성을 제안했고, 이 대통령도 이에 공감하며 “내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나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의 개헌 방향에 관해 대통령 연임제,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의 추측성 보도가 이어지자, 확대 해석이나 억측을 방지하기 위해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합의 가능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고치자는 단계적 개헌론을 주장해 왔다. 이재명 정부 인수위원회 격이었던 국정기획위원회는 개헌을 국정과제 1호로 내세우면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개헌으로 돌파하려는 ‘탈옥형 개헌’의 시도”(정점식 원내대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입장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보수 진영 내부에서 “국민의힘이 가장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는 이 대통령이 개헌과 국가 개혁을 명분으로 국민의힘 일부와 손잡고 새로운 정치연합을 만드는 것”(지난 12일,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이란 말이 나오고, 이 대통령과 국민의힘 다선 의원들의 골프 회동 소식이 전해진 뒤라 이날 야당의 반응은 격렬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웅동리 웅동저수지를 찾아 가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장동혁 대표는 페이스북에 “분권형 개헌은 ‘연임 불가’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썼다. 정 원내대표도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이 정말 개헌에 손톱만 한 진정성이라도 있다면, 국민 앞에 나와서 ‘연임은 없다’ ‘당장 재판 받겠다’는 약속부터 해야 한다”며 “이런 약속이 없다면, 정부와 여당의 개헌 논의는 그 어떤 국민적 신뢰도 받을 수 없고 그 어떤 야당의 협조도 구할 수 없다”고 적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은 “헌법 개정은 대통령이나 특정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꺼내 드는 국면 전환용 카드가 아니다”라며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고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정략적 개헌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전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느닷없이 개헌론이 튀어나와 당황스럽다”며 “국민의힘 의원 10명이 개헌에 동참하기로 확약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니냐. 안 그래도 떨어지는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개헌은 무슨 개헌이냐”고 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4%로 부정 평가(46%)보다 낮게 나타났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역전(데드크로스)한 건 이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개헌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임현동 기자
다만, 친명계는 반색했다. 당권 주자인 김민석 의원은 이날 CBS 유튜브에서 “대통령의 생각은 과거부터 여러 번 공표된 생각이고, 그것이 된다면 본인이 임기를 조금 줄일 수도 있다는 얘기는 이미 대선 전에 여러 번 했다”며 “대통령이 진정성을 계속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야당이 말한 분권형이라는 게 내각제를 가미한 취지였을 테니 청와대가 그건 아니라고 설명한 건 좋은 것 같다”며 “의원들 사이에서도 4년 중임제에 동의하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와대는 개헌이 국회에서 논의해 결정할 일이라고 하지만, 그 중심이 돼야 할 국회의장의 ‘연임 개헌’ 발언으로 사실상 동력이 상실된 상태”라며 “불씨를 살리는 길은 대통령이 먼저 임기 연장용 개헌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전달해 야당이 논의에 참여할 길을 우선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교수는 “개헌 말고도 할 일이 많은 집권 2년 차 대통령에게 개헌은 썩 반갑지 않은 이슈라 실제 개헌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