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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에 담은 70년…장인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바람 [스튜디오486]

중앙일보

2026.08.14 17:43 2026.08.1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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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486]은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들이 발로 뛰어 만든 포토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일보는 상암산로 48-6에 있습니다. "
“조금만 힘을 잘못 줘도 대나무가 깨져요. 그래서 손끝으로 느끼면서 깎아야 해요.”

김동식 선자장이 3일 전북 전주 동성공예 작업장에서 손에 천을 감고 칼로 대나무를 깎아 합죽선의 부채살을 만들고 있다.

김동식 선자장이 3일 전북 전주 동성공예 작업장에서 손에 천을 감고 칼로 대나무를 깎아 합죽선의 부채살을 만들고 있다.

0.3㎜의 두께를 만들어내기 위해 장인은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한다.

0.3㎜의 두께를 만들어내기 위해 장인은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한다.

전주 합죽선 장인 김동식의 칼끝에서 대나무 껍질이 한 겹씩 벗겨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대나무는 종잇장처럼 얇다. 빛을 비추자 투명하게 빛났다. 두께는 불과 0.3㎜.
김동식 장인이 작업장에서 부챗살을 만들기 위한 초벌 작업으로 대나무를 깎아내며 일정한 두께와 크기로 다듬고 있다.

김동식 장인이 작업장에서 부챗살을 만들기 위한 초벌 작업으로 대나무를 깎아내며 일정한 두께와 크기로 다듬고 있다.

이렇게 얇게 깎아낸 대나무 두 겹을 정교하게 맞붙여 합죽선의 부챗살을 완성한다.

이렇게 얇게 깎아낸 대나무 두 겹을 정교하게 맞붙여 합죽선의 부챗살을 완성한다.

장인의 칼은 쉴 새 없이 대나무를 깎아냈다. 기계로 대신할 수 없는 작업이다. 대나무의 결은 하나하나 다르고 부위마다 탄력도 다르다. 70년 가까이 칼을 잡아 온 장인의 손끝만이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챈다.
합죽을 이용해 부채의 골격이 만들어지는 과정.

합죽을 이용해 부채의 골격이 만들어지는 과정.

우리나라 부채는 크게 둥근 ‘방구부채’와 접었다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접부채의 한 종류인 ‘합죽선’은 대나무 겉대를 얇게 떠서 서로 맞붙여 만든다.
정련칼로 합죽선의 ‘목살’을 깎아 만들고 있다. 목살은 한지를 붙이는 부분으로 폭이 약 3.8mm에 이른다.

정련칼로 합죽선의 ‘목살’을 깎아 만들고 있다. 목살은 한지를 붙이는 부분으로 폭이 약 3.8mm에 이른다.

김동식 장인이 낫칼을 이용해 부채 표면을 고르게 깎아 매끄럽게 다듬고 있다.

김동식 장인이 낫칼을 이용해 부채 표면을 고르게 깎아 매끄럽게 다듬고 있다.

장인이 합죽선을 처음 배운 것은 1956년, 열네 살 때였다. 합죽선을 가업으로 이어오던 외할아버지 나학천 장인 밑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열다섯 살부터 칼을 다루고, 열여섯 살부터 본격적으로 부챗살을 깎았다.
김동식 장인이 부채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고 있다.

김동식 장인이 부채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고 있다.

장인은 “칼을 잘 다루려면 칼 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며 “연장이 좋아야 좋은 부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부채의 손잡이 부분인 ‘등’을 만들기 위해 대추나무를 깎아 다듬으며 크기를 맞추고 있다. 등은 대추나무를 비롯해 흑단, 먹감, 박달나무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부채의 손잡이 부분인 ‘등’을 만들기 위해 대추나무를 깎아 다듬으며 크기를 맞추고 있다. 등은 대추나무를 비롯해 흑단, 먹감, 박달나무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김동식 장인이 줄을 이용해 부채의 손잡이 부분인 ‘등’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다.

김동식 장인이 줄을 이용해 부채의 손잡이 부분인 ‘등’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다.

합죽선 한 자루에는 최소 150번 이상의 손길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 전주에는 선자청이 있었고 장인들은 ‘이부육방’으로 나뉘어 부채를 만들었다. 대나무를 깎는 합죽방, 골격을 만드는 정련방, 문양을 새기는 낙죽방, 광을 내는 광방, 한지를 붙이는 도배방, 사북을 박는 사북방이 각자의 공정을 맡았다. 지금은 김 장인이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한다.
김동식 선자장이 3일 전라북도 전주 동성공예 작업장에서 낫칼을 이용해 부채의 표면을 매끄럽게 깎아내고 있다.

김동식 선자장이 3일 전라북도 전주 동성공예 작업장에서 낫칼을 이용해 부채의 표면을 매끄럽게 깎아내고 있다.

한지를 붙이는 ‘목살’을 만들고 있다. 목살 제작은 한지가 고르게 붙도록 하고 부채의 형태를 완성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한지를 붙이는 ‘목살’을 만들고 있다. 목살 제작은 한지가 고르게 붙도록 하고 부채의 형태를 완성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대나무는 주로 구례와 순천에서 가져온다. 초록빛 대나무를 잘라 양잿물에 30~40분 삶아 진과 불순물을 빼고 말린다. 이후 끓는 물에 불린 대나무를 칼로 0.3㎜까지 얇게 깎는다. 빛이 통과할 만큼 얇지만, 부챗살로 사용할 수 있는 탄력은 남겨야 한다.
김동식 장인이 목살에 붙이기 위해 미리 재단한 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김동식 장인이 목살에 붙이기 위해 미리 재단한 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십선 한 자루에는 양쪽 변죽을 제외하고 76조각의 부챗살이 들어간다. 얇게 깎은 살을 하나씩 맞춰 풀로 붙이고 일주일가량 말리면 합죽선 특유의 탄력과 견고함이 생긴다.
한지를 붙이는 ‘도배’ 작업은 한지가 고르게 붙어야 부채가 제대로 접히고 펼쳐질 수 있다.

한지를 붙이는 ‘도배’ 작업은 한지가 고르게 붙어야 부채가 제대로 접히고 펼쳐질 수 있다.

“대나무 속살은 쉽게 망가지지만, 겉대 두 개를 포갠 합죽선은 오래 사용할 수 있어요. 탄력도 좋아 바람을 더 시원하게 몰고 오지요.”
김동식 장인이 한지를 붙인 부채를 살펴보며 완성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김동식 장인이 한지를 붙인 부채를 살펴보며 완성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부챗살이 마르는 사이 손잡이인 ‘등’에 쓸 대추나무·흑단·먹감·박달나무 등을 깎아 다듬는다. 잘 마른 부챗살에 다시 풀을 입히고 미리 재단해 접어놓은 한지를 붙인다. 마지막으로 손잡이에 장식용 고리인 ‘사북’을 박아야 비로소 한 자루의 합죽선이 완성된다.
동성공예 작업장에서 제작 중인 합죽선. 변죽에 문양을 새기는 작업은 이수자인 며느리가 맡고 있다.

동성공예 작업장에서 제작 중인 합죽선. 변죽에 문양을 새기는 작업은 이수자인 며느리가 맡고 있다.

장인의 부채는 영화에도 등장했다. 영화 ‘군도’에서 배우 강동원이 소품으로 든 부채가 바로 장인 작품이다. 하지만 촬영을 마친 뒤 돌아온 부채를 보고 장인은 속이 상했다. 낡은 소품처럼 보이게 하려고 스태프들이 커피 등을 묻힌 탓에 부채가 망가진 채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동식 장인이 사용하는 도구들.

김동식 장인이 사용하는 도구들.

그래도 장인은 웃음 지으며 “언젠가 강동원을 만나게 된다면 사인을 받아 세상에 하나뿐인 부채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오랜 세월 부채를 만드는 장인에게는 망가진 영화 소품마저도 자신의 손길이 남은 작품이었다.
김동식 장인이 만든 합죽선(대사십). 부챗살이 40개인 큰 규격의 부채

김동식 장인이 만든 합죽선(대사십). 부챗살이 40개인 큰 규격의 부채

장인이 말하는 좋은 합죽선은 모든 치수가 정확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부채다. 제대로 만든 합죽선은 관리만 잘하면 100년 넘게 쓸 수 있다.
합죽선의 손잡이 부분인 ‘등’과 양쪽 가장자리를 이루는 단단한 ‘변죽’을 어떤 소재로 만들고 어떻게 장식하느냐에 따라 부채의 개성과 멋이 달라진다.

합죽선의 손잡이 부분인 ‘등’과 양쪽 가장자리를 이루는 단단한 ‘변죽’을 어떤 소재로 만들고 어떻게 장식하느냐에 따라 부채의 개성과 멋이 달라진다.

열네 살 소년이 외할아버지에게 처음 배운 칼질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대나무 위를 움직인다. 한 겹의 대나무를 다듬고 수십 개의 살을 맞추는 손끝에는 오랜 세월 쌓인 장인의 감각이 배어 있다.
김동식 선자장이 합죽선 ‘대사십’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식 선자장이 합죽선 ‘대사십’을 들어 보이고 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아들이 제 기술을 제대로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장인은 0.3㎜의 대나무에 자신의 시간을 새기며, 바람을 만드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김종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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