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제는 왜 발표 직후 철회됐을까요. 부산엑스포 유치전은 어디서부터 어긋났고, 잼버리 파행은 왜 막지 못했을까요. 채상병 사건은 어떻게 정권의 최대 뇌관이 됐으며,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은 왜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까요. ‘
尹실록 3’ 1~5화 핵심만 모아 짚어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김건희 흉터의 비밀 ①
」
2023년 가을, 잔디는 푸르렀다. 나뭇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거나 이미 떨어져 뒹굴던 원색의 낙엽들과 선연한 보색대비를 이뤘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그 잔디밭에 빈객들이 도착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 손님들이 예닐곱 명에 이르렀을 때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제 이름표가 적힌 자리에 앉아 그날의 주인공을 기다렸다.
" 죄송한데 급무가 생겨서 식사를 같이하기 어려우시답니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식사를 하시랍니다. "
손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추 식사를 마친 뒤 찻잔을 기울이려 할 때, 저 멀리 검은색 양복을 입은 거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인간 숲’의 중앙에 주인공이 있었다.
김건희가 거기 불러 모은 이들은 기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김건희의 지방 일정을 동행 취재하면서 그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힌 이들이었다. 그때 약속한 “밥 한번 살게요” 공약이 그날 실천되고 있었다.
김건희 여사가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해 대게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 여사의 지방 행사에는 늘 많은 기자가 동행했다. 연합뉴스
" 손을 다쳐서 치료를 받느라 밥을 함께 먹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지금 나온 거예요. 양해 부탁해요. "
기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중함은 유지됐지만, 화제는 조금씩 민감해졌다. 그런데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손이 예사롭지 않았다. 온통 반창고투성이였다.
2022년 12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환영 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손흥민, 이강인 선수로부터 사인 축구공과 유니폼을 선물받고 있다. 중앙포토
2023년 초봄,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었지만, 용산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학력·경력 의혹과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취록 공개 이후 김건희는 정치적 부담 요인이 됐다. 당시 홍보 실무를 맡았던 용산 참모 A에게 실로 난감한 요청이 전달된 건 그 와중이었다.
그가 먼저 떠올린 사례는 축구 국가대표팀 초청 행사였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는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낸 대표팀을 2022년 12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 초청했다. 문제는 연회가 끝난 이후 벌어졌다. A의 말이다.
김건희 여사가 2023년 7월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회 여성기업주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영부인이 공식 행사에서 단독 축사를 하는 건 이례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사진 대통령실
입동(立冬)을 막 지난 2025년 11월 저녁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여러 사내가 모여앉았다. 그 무리에는 ‘실록 윤석열 시대’ 취재팀과 윤석열 정부 및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망가진 옛 정부 이야기를 하면서 한탄했다. 반주가 이어지면서 한탄의 데시벨은 점점 커졌다. 화제가 김건희 여사에게 이르렀을 때다. 윤 정부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았던 A가 눈이 번쩍 뜨일 말을 꺼냈다.
" 김건희, 직접 정치하려고 했어요. "
취재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뜻 믿기 어렵다는 의구심을 감지했던 걸까. B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취재팀 눈앞에 들이댔다. 화면에 뜬 건 문건 같아 보이는 서류를 찍은 사진 파일이었다. 취재팀은 문건을 떠듬떠듬 읽어내려갔다. 낭독과 해독이 완료된 순간 정적이 흘렀다.
참담했다. 물 고인 흙바닥은 진창 그 자체였다. 바다를 메워 만든, 그 짠 내 나는 인공 토지에서는 그늘 한 조각 찾기도 어려웠다. 그곳에서 활개를 치는 건 벌레들뿐이었다.
잼버리 개막 후 4일째인 8월 4일, 탈진해 여기저기 널브러진 청소년들 사이로 한 한덕수가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전날 봉변을 당했다. 그에게 봉변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대통령으로부터였다. 70대 중반의 노총리는 전화기에 대고 연신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3년 8월 4일 잼버리 야영장을 찾아 화장실을 점검하고 있다. 개막 나흘 만에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화장실·샤워실 등 시설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지면서 잼버리는 전 세계에서 지탄을 받았다. 연합뉴스
한덕수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화장실이었다. 가장 큰 불만과 원성의 대상, 그곳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한덕수는 잼버리를 총괄하던 정부 부처 최고위급 인사를 질타했다.
" 아니, 도대체 화장실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 모양입니까! "
그런데, 그 직후 천만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그 인사는 고개를 조아리기는커녕 무례하게도 총리 면전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답답하다는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의 발언에 한덕수는 아연실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