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이 척당 건조 비용 30조원이 넘는 최신예 항공모함의 설계도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고풍 취향에 맞춰 뜯어고쳐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미 항모의 외형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함교탑 위치를 당시처럼 바꾸라고 요구하면서다. 그렇지 않아도 건조 지연과 비용 초과로 골머리를 앓는 미 해군으로선 또 하나의 난관을 떠안게 된 셈이다.
미 해군의 최신예 핵추진 항공모함 USS 제럴드 R 포드함이 지난 2월 26일(현지시간) 그리스 크레타섬 수다만을 출항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전·현직 미 당국자 7명을 인용해 “해군이 신형 포드급 항공모함의 함교탑을 함미에서 함체 중앙 쪽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로 불리는 함교탑은 항모 비행갑판 위에 솟아 있는 다층 구조물로 함정 지휘와 함재기 운항 통제 등의 역할을 맡는다.
포드급은 앞선 니미츠급과 비교해 함교탑의 크기를 대폭 줄이고 위치를 약 43m 뒤로 옮겼다. 작전 효율을 위한 조치였다. 갑판 공간이 커지면 함재기가 머물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나고, 더 많은 전투기가 사출기 가까이에 자리해 세워 출격 준비 시간도 단축된다.
착함 안전성도 고려 대상이었다. 함재기가 비행갑판에 내려앉을 때 함교탑이 후방에 있다면 난기류 발생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WP는 설명했다.
그러나 포드급 항모의 외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 WP는 “신형 항공모함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운용됐던 항공모함과 더 유사한 외형을 갖기를 트럼프 대통령은 원한다”고 전했다.
미 해군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유사한 방안을 검토했다. WP는 전직 당국자를 인용해 “해당 검토에선 설계비만 수십억 달러가 들고 포드급 건조사업도 상당 기간 늦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전했다.
함교탑 위치 변경은 트럼프 대통령이 포드급에 요구하는 두 번째 대형 설계 변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포드급 4번함인 USS 도리스 밀러함의 전자기식 항공기 사출체계(EMALS)를 구형 증기식 사출기로 바꾸는 방안을 60일 안에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포드급 선도함 포드함에서 결함이 잇따라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식 사출체계의 성능과 신뢰성이 크게 개선돼 현재 포드함 운용에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문제는 도리스 밀러함에 들어갈 전자식 사출체계 생산이 이미 절반 가까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 항모는 이미 조선소 공간 부족 등으로 인도 시점이 2032년에서 2034년으로 2년 늦춰진 상태다. WP는 “이 같은 변경을 놓고 여러 관계자들이 비용뿐 아니라 미 조선 산업의 만성적인 지연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 스플리트항에 정박한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USS 제럴드 R 포드함. EPA=연합뉴스
WP에 따르면 미 의회예산국(CBO)은 앞으로 건조될 포드급 항모 가격을 척당 약 220억 달러(약 3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고 미 해군은 향후 40년에 걸쳐 포드급을 최대 10척 건조할 계획이다. 전직 미 해군 장교인 브라이언 클라크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함교탑 위치 변경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대대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WP는 “해군이 두 사안(사출체계·함교탑 위치 변경) 모두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