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의 의미는 고정된 진리나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행동과 유용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8월 초순 발표된 정부 세제개편안은 실용주의적 성격이 뚜렷하다.
전통적으로 세금 관련 정책의 지향점은 증세냐 감세냐의 선택이었다. ‘세금을 낮춰 성장을 촉진한다’든가 ‘세금을 더 거두어 재분배를 강화한다’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개편안은 ‘시장(감세) 대 정부(증세)’라는 낡은 이념적 구분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과 관련된 성장·투자·고용이라는 성과를 중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지방의 R&D와 투자에는 지역별로 1.0에서 1.5까지 차등화한 우대계수를 적용한다. 지방 창업기업에는 지역과 기업 특성에 따라 다른 세액감면을 제공한다. 인구감소지역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면 세액공제율을 5%에서 7%로 높인다는 점도 눈에 띈다. 부동산 보유세는 어떻게 보유하고 이용하고 있는가 하는 경제적 실질을 따진다. 주식·벤처투자를 단순히 자산가의 금융소득 축적 수단으로 보지 않고 기업의 자본형성 경로로 본다는 점에서 생산적 측면을 중시한다.
세율의 일률적인 인상·인하보다 맞춤형 세제로 경제주체의 행동을 바꿀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것이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경제학 원리에 한 걸음 다가선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이론적 우월성과 현실적 한계는 별개의 문제다. 가장 먼저 우려되는 점은 조세체계의 복잡성이다. 지방 투자 하나만 놓고 봐도 투자지역·기업규모·기업연령·업종·인구감소 여부에 따라 공제율이 달라지면 정책은 정교해지지만, 세법은 그만큼 두꺼워진다. 통합고용세액공제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이 수도권에 있는지 비수도권에 있는지, 근로자가 청년·장애인·60세 이상·경력단절자·육아휴직 복귀자 중 어디에 속하는지, 고용을 몇 년 유지했는지에 따라 공제액이 갈린다.
결과적으로 행정비용이 많이 늘어나고 논란의 여지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의 어려움과 마주칠 수 있다. 어떤 투자가 생산적이고 어떤 투자가 비생산적인가를 판단하는 것만 해도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조세정책과 산업정책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절세 및 로비 유인이 늘어나 결국 자원배분이 왜곡될 수 있으며 기업들의 지대추구 행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시행 과정에서 새로운 특례를 계속 추가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조세지출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효과가 낮은 특례는 폐지하는 ‘세제의 가지치기’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실용주의가 상황에 따라 정책을 바꾸는 ‘임기응변’으로 변하면 경제주체의 기대 형성을 어렵게 하고 정책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