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수 전 틴탑멤버(왼쪽)와 노혜란 전 브레이브걸스 멤버가 2024년 9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국회에 간 아이돌, K-POP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뉴시스]
K팝 아티스트의 권익 개선을 내걸었던 아이돌 노동조합 설립이 무산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해 9월 그룹 틴탑 출신 방민수 등이 주도해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 지 약 9개월 만에 신청을 철회했다.
1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지난 5월13일 아이돌 노조 설립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방민수로부터 “설립 인원(‘조합원’의 오기로 추정)의 가치 차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신고 반려 의사를 전달 받았다. 지난해 9월 해당 지청에 아이돌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할 당시 준비위원회는 ▲아이돌의 최저 생계 보장 ▲4대 보험 가입 확대 ▲악성 댓글 등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소속사의 법적 대응 및 삭제·고소 지원 등의 정책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출범 당시 방민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참여 의사를 밝힌 아이돌이 10여 명 수준”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신고서 상 조합원 수는 2명에 불과했다. 노조 출범을 위한 법률·행정 조력도 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성남지청은 9개월 동안 신고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네 차례 자료 보완을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돌이라는 직업 특성 상 법적 노동자 지위를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지, 현역 아이돌이 소속사와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을지 등 현실적인 한계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이돌과 소속사의 관계는 계약서 상 동업자이만 실제로 성공 전까지는 상하관계에 가깝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라는 의미다.
이와 관련, 방민수는 본지에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당시 아이돌 노조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책적 해결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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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노조까지…아이돌은 왜 사각지대에 놓였나
2001년 H.O.T 팬들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해체반대 모임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아이돌 노조는 지난해 추진 단계부터 업계 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2001년 1세대 아이돌인 H.O.T.가 해체 무렵 SM엔터테인먼트와의 불공정 계약 의혹을 제기한 이후 수익 미지급 논란, 부당 대우, 미성년 아티스트 보호 문제 등이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연습생이 넘쳐 나는 무한 경쟁 환경에서 당사자들이 조직화해 권리를 요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기획자가 먼저 큰 돈을 투자한 후 성공하면 아티스트가 정산 받는 방식의 산업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 매니지먼트 업계 관계자는 “한 팀이 데뷔하는 데 적게는 50억원, 많게는 200억원까지도 든다”며 “제작자가 막대한 초기 투자 부담을 짊어지고 아이돌 연습생도 이에 동조하면서 ‘모 아니면 도’로 움직이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룹 모모랜드 멤버 혜빈은 지난달 4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아이돌이 돈 못 버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대형 기획사를 제외하고는 연습생 시절 사용한 레슨비, 식비, 숙소비, 연습실 대여비 등이 데뷔 후에 청구된다. 쉽게 말해서 후불이고, 억 단위 빚을 지고 데뷔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모모랜드 출신 혜빈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썸네일. [유튜브 캡처]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연습생 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기획자와 아티스트가 동업자 관계가 아닌 명확한 상하관계로 형성되며 벌어진 일들”이라고 지적했다. 배국남 평론가는 “계약서 상 투자금과 경비의 구분, 수익 분배 시점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모호하다보니 성공 후엔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분쟁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체부가 2018년 고시한 표준계약서 7종 중 연습생 대상 계약서에는 “연습생의 훈련활동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기획업자가 부담한다”는 원칙과 함께 “공제여부 및 방법은 기획업자와 연습생이 별도로 협의하여 정한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아이돌을 노동조합법 상 근로자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도 쟁점 중 하나다. 아이돌은 계약서 상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 등 ‘인적 종속성’을 갖는 존재가 아니고, 성공 시 보수를 일정 지분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2024년 뉴진스 멤버 하니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했지만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다만 대법원은 2018년 방송연기자노조 판례에서 전속 연기자가 아니더라도 노조법 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은 “방송연기자 중에는 방송사에 전속된 것으로 보기 어렵거나 그 소득이 출연료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방송연기자와 방송사 사이의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보면 노동조합을 통해 방송사업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무제공조건 등을 교섭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크므로, 전속성과 소득 의존성이 강하지 않더라도 방송연기자가 노조법상 근로자임을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한편 문체부 관계자는 “불공정 계약에 대해서는 대중문화예술지원센터 신고 센터 등을 통해 법률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와 별개로 격년으로 이뤄지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 표준계약서 사용 권장 등으로 전체적인 문화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