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장쩌민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를 마치고 주석단의 당정 고위 간부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있다. CC-TV 캡처
17일 중국공산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장쩌민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를 열고 3세대 당·국가·군대 최고 권력자였던 장쩌민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과 동급으로 격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전국에 생방송 된 연설에서 “두 개의 수호(兩個維護·양개유호)를 달성하라”며 자신에 대한 충성을 직접 요구했다. 그는 장쩌민이 남긴 유산을 정치적 신앙, 인민을 위한 정서, 혁신 정신, 전략적 사유, 과감한 담력 등 다섯 가지로 나눠 충성을 가장 앞세웠다.
이른바 ‘두 개의 수호’는 집권 2기 초반인 2018년 9월 처음 등장한 용어다. 시진핑 총서기의 당 중앙 핵심 지위 및 전당의 핵심 지위, 그리고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적이고 통일된 영도를 각각 결연히 수호하라는 충성 화법으로 2022년 20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當章)에 삽입됐다.
이를 놓고 시 주석이 장쩌민을 자신의 권력 다지기에 활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수 충북대 교수는 “2005년 6월 천윈(陳雲)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 이후 21년 만에 마오와 덩과 같은 격식의 추모 행사를 부활시킨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재확립하려는 의도”라며 “죽은 장쩌민으로 산 시진핑을 빛내는 구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40여분 분량의 연설에서 시 주석은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유혈진압을 정확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989년 봄과 여름 사이 우리나라(중국)에서 심각한 정치 풍파가 발생했다”며 “장쩌민 동지는 당 중앙의 정확한 정책 결정을 굳건하게 옹호하고 집행했고, 상하이의 안정을 강력하게 수호했다”고 말했다.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장쩌민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원자바오(오른쪽) 전 총리와 장더장(왼쪽)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을 듣고 있다. 피닉스TV 캡처
이는 시 주석이 지난 2024년 8월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기념 좌담회 연설에서 “위기의 순간 덩샤오핑 동지가 당과 인민을 이끌고 동란에 반대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호했다”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시 주석은 또 이례적으로 장쩌민의 권력 이양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장쩌민 동지는 16차 당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주도적으로 중앙의 영도직무를 맡지 않겠다고 했으며, 2004년에는 당·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서 물러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내년 가을 21차 당 대회 개최를 공식화한 시점에서 이날 연설 중 가장 주목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 주석은 장쩌민 집권기간에 이뤄진 외교정책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홍콩과 마카오의 순조로운 반환이 실현되도록 지도했으며, 양안(중국과 대만) 쌍방이 하나의 중국의 원칙을 구현하는 ‘92컨센서스’를 추동했고, 일련의 외교 및 국제 전략 사상을 제시해 세계의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를 추동하는 정확한 방향으로 발전을 추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제시한 이른바 글로벌 발전·안보·문명·거버넌스 이니셔티브의 실현을 촉구했다.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장쩌민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왕양(왼쪽) 전 전국정협주석과 쩡칭훙(오른쪽) 전 국가부주석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을 듣고 있다. CC-TV 캡처
이날 행사에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참석하지 않았다. 주석단 1열에는 전·현직 최고 지도부 31명이 착석했다. 퇴직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의전 서열순으로 원자바오, 자칭린, 장더장, 위정성, 리잔수, 왕양, 리란칭, 쩡칭훙, 리창춘, 허궈창, 류윈산, 왕치산, 장가오리 등 12명이 참석했다. 내년 당 대회를 앞두고 “원로 정치 리스크”의 선제적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장쩌민 기념주화와 기념 우표도 발행됐다. 특히 기념 우표는 1.2위안 우표 2장과 6위안짜리 소형시트 1종으로 구성했다. 이 형식은 1993년 마오쩌둥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 2004년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와 같은 규격이다. 100주년 대회를 개최한 저우언라이(1998년), 류사오치(1998년), 주더(1986년), 천윈(2005년)은 소형시트 없이 기념 우표만 발행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앞서 16일 장쩌민의 업적을 담은 6500여자 분량의 장문의 기사를 싣고 “두 개의 수호를 달성하라”며 시 주석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특히 오는 10월에 열리는 20기 5중전회를 의식해 이른바 ‘시진핑 당 건설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실천하자고도 덧붙였다.
중국 3세대 지도부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장쩌민은 생전에 현대 중국 정치 구조에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다. 우선 들쑥날쑥하던 정치국 상무위원 제도를 7인제로 안착시켰다. 그의 후임자인 후진타오 집권기에는 9인제로 운영했으나 시진핑 집권 후 다시 장쩌민이 확립한 7인제로 복귀했다. 또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집권기 내내 당 주석과 국가주석, 군사위 주석이 분산돼 있어 발생했던 혼란을 끝냈다.
장쩌민은 1989년 6월 13기 4중전회에서 당권을, 11월 5중전회에서 군권을 장악한 뒤 1993년 3월에는 국가주석까지 겸직하는 이른바 ‘삼위일체’ 체제를 확립해 리더십의 혼란을 방지했다.
류사오치, 린뱌오, 후야오방, 자오쯔양까지 유혈 숙청이나 밀실 담합으로 결정됐던 최고지도자 교체를 끝내고 평화적 정권 이양의 첫 사례를 만든 것도 장쩌민이었다. 2002년 16차 당 대회에서는 67세는 정치국 상무위원에 유임하고 68세는 퇴임한다는 7상 8하 불문율을 만들었다. 이는 지난 2022년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에 의해 파기됐다.
상하이 당 서기는 곧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하는 상하이방의 부상도 장쩌민 정치의 유산이다. 다만 지난 2022년 동북 출신의 천지닝 현 당서기가 상하이 당서기에 부임하면서 상하이 현지 출신이 독점하던 상하이방의 시대도 변화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