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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필이 생일축하 해주는 80세 천재 부흐빈더 “미친 수집가처럼 산다”

중앙일보

2026.08.16 23:51 2026.08.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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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곡의 악보 39종류가 모두 머리에 들어 있어요. 지금이라도 바로 연주할 수 있죠.”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80)는 빈틈없이 채워진 책장 앞에서 수집한 악보들을 소개했다. 책장에는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쇼팽 작품의 악보가 가득했다. 그는 “모두 1000권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의 악보는 서로 다른 판본으로 39종이 있다. 그는 “수많은 편집본을 비교해야 진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고 믿는 학구파 연주자다. 인터뷰는 빈의 외곽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 최근 이뤄졌다.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한편 건축가를 꿈꾸던 40년 전 스스로 설계해 지은 건물이다.


-이렇게 악보를 모으고 연구하는 이유는 뭔가요?

“일반 악보에 오류가 너무 많아요. 작곡가 시대에 나왔던 초판본부터 시작해서 여러 작곡가, 음악학자, 피아니스트들이 편집한 버전을 모두 봐야죠. 특히 출판업자들이 훼손시킨 부분을 잡아내야 해요.”


-악보는 어떻게 모았나요. 기준이 있나요?

“저는 약간 미친 수집가에 가까워요. 한번은 러시아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전집 악보를 구했어요. 너무 무거워서 겨우 들고 집에 돌아왔죠.”


실제로 부흐빈더의 집은 그가 모으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벽에는 그림과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있고, 피아노 옆쪽으로는 당구대를 비롯한 게임 관련한 물건들이 모여있었다. 부흐빈더는 진귀한 술을 수집하고 옛 악기 또한 모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도 가지고 있어요. 조금 미친 사람처럼 모으고 비교하고 길을 찾아 나가는 게 음악가로서 나의 일이죠.”


부흐빈더는 10대에 빈에서 데뷔했고 1968년에 첫 음반을 냈다. 지금까지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을 무대에서 60회 이상 연주하는 기록을 세웠고 하이든의 소나타 전곡, 모차르트의 협주곡들도 녹음했다. 하이든부터 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까지 길러낸 빈의 정통파 음악인이자 이 음악 도시의 자부심인 피아니스트다. 빈 필하모닉이 12월 1일 그의 80번째 생일 주간을 맞아 총 6번의 공연을 준비할 정도다.


계속해서 빈에서 살아온 그의 삶은 단순하다. 오전 시간에 집중해서 음악을 연구하고 충분히 휴식한다. 연주 횟수를 1년 30회로 제한하고 빈의 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린다고 했다. 부흐빈더의 집은 베토벤의 휴양지였던 하일리겐슈타트와 가까운 지역, 조용한 산의 중턱에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자택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김호정 음악에디터

오스트리아 빈의 자택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김호정 음악에디터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이 가장 중요해요. 오전 중에는 무조건 1시간 정도 피아노를 연습해요. 그런데 한 5분 정도 건반을 누르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요. 악보와 자료를 가져다가 공부하고 분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24시간 내내 음악 생각을 하는 거죠.”


-여러 악보와 자료를 놓고 연구하는데,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나요. 피아니스트, 학자, 또는 수집가?

“음악가죠. 영원히 그러고 싶고요.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내면서 음악의 핵심을 전달하고 싶어요.”


-70년 동안 경력을 유지해오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음악 용어로 치면 제 삶을 ‘크레셴도(crescendo)’라고 느껴요. 점점 나아졌죠. 더 깊이 있게 알게 되고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좋은 음악가의 요건은 무엇인가요.

“재능과 규율이에요. 이 둘이 가장 중요하죠.”


-유명한 평론가 요아힘 카이저(1928~2017)는 당신을 ‘가장 뛰어난 천재’라고 칭했어요. 악보에 손가락 번호를 적지 않고 연주한다고요.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결정하죠. 계획하는 대신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바꾸면 음악이 더 좋아져요.”


-어렵고 긴 연주에서도 악보를 보지 않죠. 피아노를 연주하며 동시에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도요. 음악회장에 악보를 가져가긴 하나요?

“머릿속에 모든 악보가 들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악보를 가져가지 않아요. 악보를 넣을 가방도 없고요. (웃음) 하지만 무대에서 엄청나게 긴장해요.”


-아직도 무대가 두려운 건가요?

“요즘 들어 더욱 그래요. 연주 전에 몸이 굳고 차가워져요.”


-어떻게 극복하나요?

“지휘자 로린 마젤(1930~2014)이 최고의 조언을 해줬죠. 연주 직전에 대기실에서 연주해보지 말 것, 그리고 첫 음에만 집중할 것. 무대에서 첫 음을 시작하면 다 괜찮아져요.”
루돌프 부흐빈더는 여러 악보를 놓고 철저히 분석하는 학구파 피아니스트다. 김호정 음악에디터

루돌프 부흐빈더는 여러 악보를 놓고 철저히 분석하는 학구파 피아니스트다. 김호정 음악에디터


부흐빈더는 다음 달 한국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 6곡 시리즈 공연을 연다.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각 3곡씩 이틀에 걸쳐 연주하는 계획이다. 17일 27·23·21번을, 20일에는 9·22·20번을 들려준다. 모차르트 역시 수십 종류의 악보를 비교하고 분석해 얻은 해석이다. 그는 “얼마 전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며 지휘하는데 클라리넷 주자가 음 하나를 빼먹어 내가 휘파람으로 불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부흐빈더가 이토록 악보 수집에 집착하고 연구하는 궁극적 이유는 뭘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작곡가의 진짜 의도와 남긴 자료를 완전히 이해한 다음에야 연주자가 자유로워질 수 있죠. 이게 순수한 기쁨입니다.” 부흐빈더의 한국 두 번째 무대(9월 20일)는 더중앙플러스의 더클래식 구독자 초청 공연이다. 부흐빈더는 9월 18일 아트센터 인천, 19일 부산콘서트홀의 무대에도 선다.



김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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