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평화 특사가 이집트에서 친이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지도부를 직접 만난 데 이어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다. 이란과의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가자지구에서라도 충돌을 줄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온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UFC 프리덤 250 라이트급 챔피언십 경기가 끝난 뒤 재러드 쿠슈너 미 대통령 특사가 링으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쿠슈너는 이날 이집트 엘알라메인에서 칼릴 알하이야 하마스 지도자를 만났다. 지난해 10월 가자 휴전 합의 이후 쿠슈너가 하마스 지도부와 직접 만난 건 처음이다.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가자 평화위원회 고위대표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이집트·카타르·튀르키예 측 중재자들도 참석했다.
쿠슈너가 하마스에 요구한 건 무장 해제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달 제시한 가자 평화 로드맵의 핵심은 하마스의 무장 해제와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다. 이후 국제안정화군(ISF)을 배치한 뒤 팔레스타인 기술관료 정부가 가자를 통치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16일(현지시간) 이집트 엘알라메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특사(왼쪽)가 압델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만나 가자 평화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누가 먼저 움직일지를 놓고 양측 입장이 맞서고 있다. 이날 회동에서 알하이야는 네타냐후가 로드맵 이행을 공개적으로 약속해야 무기 반납을 시작할 수 있다고 요구했다. 쿠슈너는 이에 “말이 아니라 실제 조치가 필요하다”며 하마스가 먼저 행동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가 전했다.
쿠슈너는 회동 뒤 이스라엘로 이동해 17일 네타냐후를 만났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쿠슈너는 이날 4시간가량 이어진 회담에서 “가자지구 휴전안에 장애물을 만들지 말라”고 말했다. 이에 네타냐후는 “오는 10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평화안을 진전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쿠슈너에게 “하마스가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고 CNN이 전했다.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저지주 모리스타운 공항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며 손짓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가 가자지구의 평화 정착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란전쟁 장기화로 정치적인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실시된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은 35%로 취임 후 최저치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가자까지 다시 화염에 휩싸이면 중동 리스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트럼프가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 중 한 명(가디언)”인 맏사위를 중동에 보낸 이유다. 1기 행정부 때부터 트럼프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온 쿠슈너는 공식 외교관은 아니지만, 2기 행정부 들어 이란과 우크라이나에 이어 가자 협상에도 잇따라 투입됐다.
지난 2월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미국평화연구소에서 열린 평화위원회 회의에서 재러드 쿠슈너 특사(왼쪽)가 발언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뷔르겐슈톡에서 미국·이란·파키스탄·카타르 4자 회담을 앞두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왼쪽)이 재러드 쿠슈너 특사 옆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운데),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회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쿠슈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오는 10월 27일 이스라엘 총선 승리를 노리는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에 ‘양보’하려 하지 않아서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아랍권 외교관을 인용해 네타냐후가 총선 전 하마스 무장 해제의 “의미 있는 진전”을 허용할지 회의적이라고 보도했다.
게다가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가자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쿠슈너가 하마스 측을 만난 16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와 중부 누세이라트를 공습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라믹지하드(PIJ) 대원을 겨냥했다면서다. 또, 네타냐후 연정의 극우 성향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같은 날 공개된 팟캐스트에서 “매일 밤 가자에서 30~40명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1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서 주민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주거용 건물 잔해 옆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예루살렘 성전산에서도 유대인들이 ‘유대인 등 비무슬림은 정해진 시간에 방문만 할 수 있다’는 원칙을 깨고, 공개 기도를 했지만 경찰은 이를 막지 않았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적용돼 온 원칙을 깬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점령했지만, 이슬람권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성지의 종교·행정 관리를 기존 요르단계 이슬람 종무재단(와크프)에 맡기고 이 같은 원칙을 지켜왔다.
이에 이집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튀르키예·파키스탄·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8개국 외교장관은 16일 공동성명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평화안 로드맵 거부가 트럼프의 종전 노력을 “직접적으로 좌초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과 평화위원회에는 이스라엘이 합의를 이행하도록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고 이란 등 중동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을 일축했다. 17일 미 폭스뉴스의 트레이 잉스트 기자가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이란이 항복의 백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 계획은 없다”며 “서두를 필요도 없고, 중간선거는 내 생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관계자들과 비공식적인 접촉이 있다고 확인하면서 “그들은 포커를 잘 치지만,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과 오만 간의 호르무즈해협 통제권 협상에 대해서는 “오만이 방해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완전히 폭격할 것”이라고 경고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