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의 저자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유대인이었다. 『죽음의 푸가』의 시인 파울 첼란도, 철학자 장 아메리도, 독일의 역사학자 요제프 불프도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걸어 나와 수십 년을 살고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평생을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홀로코스트는 지나간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었다.
외상만큼 치명적인 정신적 고통
5·18 유공자 공개 요구는 지나쳐
고통에 둔감한 사회 될까 걱정돼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깊은 심해에서 갑자기 올라올 때 얻는 잠수병으로 비유했다. 감압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오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생존해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상당한 손상을 입는다. 고통과 절망에 빠져서 어떤 이는 자신의 목숨을 끊고 또 다른 이는 세상을 향해 파괴적인 복수를 다짐했다. 의사에게 이들은 모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였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재난 피해자들에게 정신과 진료 및 심리치료를 지원한 것은 2008년 소방청을 중심으로 재난심리지원센터가 개설되면서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때 중앙 재해 심리지원단이 꾸려졌다.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신체적 외상의 고통만큼이나 사람을 괴롭힌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전쟁·사고·자연재해·범죄 등 생명을 위협하는 극심한 충격을 겪은 뒤 발생하는 정신 건강 질환이다. 원치 않는 기억의 재경험, 작은 자극에도 놀라는 과한 각성 증상은 일상생활에 큰 고통을 준다.
내 어린 시절 친구의 삼촌은 월남 참전 용사였다. 그는 밤마다 고함을 지르고 동네를 맨발로 뛰어다니며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버스 안에서 군인들에게 끌려가 삼청교육대를 거친 지인은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고 평생 낭인으로 살았다. 광주에서 학생과 군인으로 5·18을 겪은 지인들 누구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치료를 받지 못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광주 5·18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다수가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아픈 기억을 다른 기억으로 대체하거나 현재에 집중해서 상처를 희석하며 스스로 치유해야 했다. 30년이 지나서 보상 형태로 국가 지원을 받았지만, 정신적 치유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5·18에 대한 대기업의 마케팅이나 어린 학생들의 야유를 다시 들먹이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극단적으로 둔감해지는 현상이 걱정스럽다. 감정이입의 공감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파급될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발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5·18 포럼의 주재자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명분은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5·18 유공자의 인정 유형별 인원, 심사 기준, 구체적 인정 사유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공정성과 정의가 확립된다는 요지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유공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의 명단을 ‘개인정보 보호 및 사생활 침해 우려’를 이유로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유독 5·18 유공자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발언은 선동적으로 들린다. 이미 2018년에 다수의 일반인이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1심과 2심, 대법원의 최종심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5·18 유공자 명단은 개인식별정보에 해당함으로 일부를 가리고 공개하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을 특정할 수 있어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판단이었다. 2020년 대법원이 내린 또 하나의 판결은 5·18 유공자 중 공인인 특정 정치인 개인에 한해서 공적 조서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한 나라의 정치인이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하고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모습은 고개를 젓게 한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도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나는 한나 아렌트가 친구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 쓴 글을 떠올렸다. “우리는 생명이 최고의 선이며 죽음이 최대의 공포라는 확신 아래 자랐는데, 생명보다 지고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죽음보다도 나쁜 테러의 목격자가 되고 희생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