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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택 공급 대책, 수요자 요구 파악이 먼저다

중앙일보

2026.08.17 08:16 2026.08.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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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고려대 도시연구원장

김세용 고려대 도시연구원장

주택공급정책이 또 나왔다. 지난 1년 동안 내놓은 굵직한 것만 따져보니 이번 8·13 대책은 세 번째다. 별 대책이 없었거나 정권 말에야 공급정책을 발표했던 과거 정부들과 비교하면 부지런한 것 같지만 그만큼 부동산 시장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매번 꼼꼼하게 정책을 내놓았겠지만, 약발이 제대로 먹히는 대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60년 전에 맞춘 계획 비현실적
인구구조 변화 안 맞는 법 고치고
생애주기별 선호 제대로 반영을

이번 대책도 앞선 것들과 궤를 같이한다. 구체적 공급 물량 추가, 인허가 단축, 각종 규제 완화, 공급 가속도 대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정부가 전에도 숱하게 제시했다. 좀 더 들여다보자. 과다 계획돼 팔리지 않았던 신도시의 상업용지 등을 주택용지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는 평가할만하지만, 부지 규모나 전환기준 제시 등 신속한 추진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학교나 공공청사를 주택과 복합화하는 작업으로 이번에 지목한 부지들은 폐교 또는 청사 이전을 전제로 한 곳들이어서 시범사업 정도로 그칠 우려가 있다. 이번에 발표된 정책도 전에 내놓은 것들처럼 실현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많아 걱정이다.

역대 정부는 강력한 세제 개편으로 수요를 억제한 뒤에 주택을 대량으로 빠르게 공급하거나 그런 취지의 대책을 발표하면 수도권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가정을 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집을 원하는 수요자의 요구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호응도 있고 속도도 생기게 마련인데 이를 간과하면 대책이 먹히기 어렵다.

인구구조 변화부터 보자. 10년 전 1, 2인 가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고, 지금은 70%를 웃돈다. 이런 급격한 변화 와중에도 현실 수요와 달리 아파트를 단지형으로 크게 짓는 이유는 관련 법 때문이다. 건축법·주택법 등은 5인 가구가 다수였던 시절에 만들었다. 이런 법을 적용하면 아파트 단지의 중심에는 어린이 놀이터와 조경 공간이 들어서고, 건폐율은 20%를 넘기 어렵다. 1인 가구들은 집에서 취사를 잘 하지 않는데도 커다란 주방을 필수적으로 둬야 하는 것이 현행법 규정이다. 맞지 않는 옷을 입으라 하니 토지와 건물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

미국 뉴욕에서는 오피스를 주택으로 개조해 공실률을 줄이고 부족한 주택 공급을 확충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사회 변화와 수요자 요구에 맞춰 법을 탄력적으로 바꾸면 공급할 주택이 늘고 땅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60년 전에 만든 법에 따라 움직이니 주택을 지을 땅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청사 재건축을 통해 주택 물량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좋은 시도이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복합청사는 임대주택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다.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우리 동네 집값이 하락한다”고 우려하는 주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사업의 진도가 나가기 어렵다. 임대와 분양을 적절히 혼합하는 소셜믹스(social mix)가 대안이 될 수 있다.

20, 30대는 주택의 위치를 중시한다. 직장·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한다. 이들을 위해서는 역세권에 위치한 공공청사 재건축을 더 빨리 진행해야 할 것이다. 30, 40대가 되면 자가 요구가 당연히 생겨난다. 아이가 태어나면 안정적으로 한곳에 머물러 살기를 더 원한다. 초기에 주택 가격의 20%를 내고 이후 순차적으로 납입해가는 지분적립형 주택 공급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8·13 대책에서 지분적립형 공급 방향을 제시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빠른 후속 작업과 대량의 물량 제시가 필요하다. 50, 60대는 보유 주택을 활용해 소득을 얻고 싶어하고, 살아온 동네에서 늙어가길 원한다. 연금형 주택의 개량이 필요하다. 수요자는 생애주기별로 주택에 대한 요구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정부는 이를 제대로 고려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수요가 몇몇 지역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30, 40대가 ‘패닉 바잉(panic buying)’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패닉 폴리시(panic policy)’라 봐야 할 때가 더 많았다. 지금 상황에서 주택 공급은 효율이 관건이다. 효율은 혁신에서 나와야 하는데, 관성대로 추진하다 보니 일이 진행되기 어렵다. 생각을 대폭 바꿔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세용 고려대 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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