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릭(복제약) 약가 인하를 앞두고 제약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투자 축소와 원가 절감, 조직 효율화 등 긴축에 나섰다.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연구개발(R&D) 투자 기업에 약가 우대 혜택을 주기로 하면서 ‘덜 벌고 더 써야 하는’ 제약사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일동제약은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올해 조직과 채용, R&D 예산을 재조정했다. 종근당 역시 지난달 영업 조직 등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재배치했다. 중견 제약사인 K약품은 1200억원 규모의 생산시설 투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규모가 작은 제약사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매출 1000억원 대의 중소 제약사 관계자는 “부서별로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더 저렴한 원료를 구매할 경로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매출 200억~300억원 대 제약사들이 매물로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에서 45%로 낮췄다. 새 산정률은 신규 제네릭부터 적용돼, 인하된 약가는 10월부터 반영될 전망이다. 기존 복제약은 단계적으로 약가가 조정된다.
제약·바이오 단체들은 이번 개편으로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 손실과 1만4800명의 고용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한 대형 제약사 임원은 “연말쯤 업계의 고강도 대응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은 제네릭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개선하고, 제약사의 혁신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R&D 투자 등 요건을 충족하는 혁신형·준혁신형 제약사 신규 품목에는 각각 60%, 50%의 약가 산정률을 적용해 우대한다. 하지만 업계에선 약가 인하로 수익성이 떨어지면 R&D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국내 주요 제약사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지난해 기준 대웅제약 15.8%, 한미약품 14.8%, 유한양행 11.1% 등이다. 상장 제약사 평균은 8.4%지만 5%도 안 되는 제약사도 적지 않다. 정찬웅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본부장은 “돈이 있어야 기술과 인력, 미래에 대한 투자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긴축 기조는 빅파마(글로벌 대형 제약사)에서도 확산 중이다. 화이자의 비용 절감 목표는 2029년까지 총 약 13조70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이들은 재무적 여유가 있는 만큼 비용을 줄이면서도 성장 분야엔 계속 투자하고 있다. 실제 화이자의 2분기 R&D 지출은 전년 동기보다 12% 늘었다. 빅파마들의 지난해 매출 대비 R&D 비중은 MSD·아스트라제네카 24%대, BMS·일라이릴리 20%대, 화이자 16%대였다.
국내 제약사도 R&D, 해외 진출 투자가 절실하지만 수익 감소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딜로이트그룹은 “R&D·자체 생산 역량을 갖춘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대형·혁신 제약사와 중소·제네릭 제약사 간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