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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의 시선] 친일 단죄, 지나치지 않나

중앙일보

2026.08.1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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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논설위원

신준봉 논설위원

친일파와 그 후손이 탈 없이 잘사는 현실은 한국인들의 분노 지수를 한껏 치솟게 한다. 최근 여배우 하영의 경우도 그런 사례. 뿌리 깊은 반일 감정,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이 복합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친일재산귀속법(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도 국민적 분노에 따른 것이었다. 1997년 이완용의 증손자가 당시 시가로 30억원 상당의 서울 북아현동 땅을 부당하게 뺏겼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후 땅을 팔아치우고 캐나다로 이민가자 여론이 들끓었다. 2005년 친일재산귀속법 제정, 그에 따른 2006~2010년 1차 친일재산환수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친일파 168명으로부터 2359필지, 2373억원 상당의 재산을 환수했다.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2009년 『친일인명사전』(전 3권, 4389명 수록) 발간도 DJ 정부 시절인 2001년 시작된 것이다.

여배우의 증조부 단죄 지나친 듯
친일파였지만 정상 참작 여지도
현 시점의 과거사 단죄 섬세해야

『친일인명사전』의 경우 박정희·장지연 등이 포함돼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거사 청산 작업이 역사적으로 꼭 필요한 통과 의례라는 사실에 토 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영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논란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친일 단죄가 성급하게 이뤄지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안상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렸다.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참여했던 대정친목회가 내선융화(內鮮融化)를 표방한, 논란의 여지 없는 친일 엘리트 모임이었기 때문에 안상호는 명백한 친일 행위자라고 했다.

하지만 학계에는 온도 차가 느껴지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정친목회가 친일 단체 목록에 올라 있기는 하다. 친일재산 환수의 근거가 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사회·문화 기관·단체를 통해 내선융화를 적극 주도한 자를 진상 규명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대정친목회가 그런 단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으로 치면 한미우호협회나 라이온스클럽 비슷한 단체였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일제와 밀착하지 않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마다치 않았다는 점에서 친일파로 분류할 수 있고 당연히 비판도 할 수 있지만 대정친목회 평의원이 가령 이견 없이 핵심 친일파로 분류되는 중추원 참의 정도의 위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검증 소동은 과도한 것 아닌가.

시야를 넓혀 보면 다른 분야에서도 ‘친일의 죄과’ 이상으로 비판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학계에서는 미당 서정주 시인을 그런 사례로 꼽고 싶다. 미당은 문학계 친일 청산의 일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임종국의 『친일문학론』(1966)의 부록에 친일 작품 목록이 올라 있을 뿐이다. 첫 시집 『화사집』에 대한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고는 하지만 1942년 이후 그가 도합 10편의 친일 시·산문 등을 작성할 당시 그는 20대 후반의 신인이었다. 이광수·최남선 등 거물 친일 문인이 초점이었지 그의 친일 행적을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젊은 작가들을 묶어 친일 행적을 소개한 ‘신인작가론 기타’에도 소설가 김동리는 들어 있어도 서정주의 이름은 없다. 미당은 1972년 일지사에서 출간한 『서정주 문학 전집』에 실린 ‘창피한 이야기들’에서 친일 시를 썼던 때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실제로 그런 문장이 없는 데도 ‘일본이 망할 줄은 몰랐다’고 썼다고 와전돼 미당을 비판할 때 단골 거론되지만, 글을 읽어 보면 그는 작심한 친일파라기보다 생계형이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친일시로 거론되는 ‘송정오장(松井伍長) 송가(頌歌)’를 쓴 1944년 12월 미당 같은 지식인이 일본의 패망을 예감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몰랐을 수 있다는 이견도 있다. 의사든 시인이든 일제와 거리를 뒀거나 적극적으로 반일한 사례에 견주면 안상호·서정주는 언제나 비판받아야겠지만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는 것이다.

친일 단죄의 감정적 시효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안상호 비슷한 사례가 불거질 때마다 지금 같은 홍역을 치러야 하나. 밀란 쿤데라의 산문 ‘안갯속의 길들’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간은 안갯속을 나아가는 자다. 그러나 과거의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뒤돌아볼 때는 그들의 길 위에서 어떤 안개도 보지 못한다. (…) 안개가 더는 거기에 없다.”(『배신당한 유언들』)

2026년에는 더 이상 자명할 수 없게 느껴지는 일제 강점기 역사의 향방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안갯속이었다. 앞으로 친일 단죄 때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신준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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