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권 확대와 맞물려 퇴직 경찰관의 법무법인 재취업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부의 취업심사 문턱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로펌 취업심사를 받은 퇴직 경찰관 4명 중 3명 이상이 취업제한 또는 불승인 결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7월까지 경찰청 퇴직자가 법무법인을 취업 예정 기관으로 신고해 취업심사를 받은 사례는 모두 229건이다.
이 가운데 취업제한은 55건, 취업 불승인은 26건으로 총 81건이 취업에 제동이 걸렸다. 전체 심사 건수의 35.4%에 해당한다.
연도별로 보면 제한·불승인 비율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2021년에는 50건 가운데 2건으로 4.0%에 그쳤지만, 2022년에는 49건 중 11건으로 22.4%까지 높아졌다.
2023년에는 54건 가운데 23건이 제한·불승인돼 42.6%를 기록했고, 2024년에도 26건 중 11건으로 42.3%에 달했다.
경찰청 퇴직자 법무법인 취업심사 제한·불승인 현황. 연합뉴스
특히 지난해에는 35건 가운데 27건이 취업제한 또는 불승인 결정을 받아 비율이 77.1%까지 치솟았다. 올해도 7월까지 15건 가운데 7건, 46.7%가 취업에 제동이 걸렸다.
취업이 막힌 사례는 경감과 경위 등 중간 간부급에 집중됐다.
전체 제한·불승인 81건 가운데 경감이 49건으로 60.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경위가 16건으로 뒤를 이었고 경정 9건, 총경 4건, 경무관 2건, 경사 1건 순이었다.
퇴직 경찰관들이 취업을 시도한 직책도 고문이나 전문위원에 그치지 않았다. 예비 변호사와 신입 변호사, 법무실장 등 실무직까지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됐다.
2024년 12월 퇴직한 총경 출신 인사는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으로 취업하려다 불승인 결정을 받았다. 같은 시기 퇴직한 경무관 출신 인사도 같은 법인 고문직에 대해 취업제한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김앤장법률사무소 예비 변호사로 취업하려던 경감 2명과 경위 3명이 모두 취업제한 결정을 받기도 했다.
퇴직 직후 로펌행을 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전체 심사 229건 가운데 167건, 72.9%는 퇴직 후 1년 이내에 법무법인 취업이 예정된 경우였다. 특히 퇴직 후 3개월 이내 취업 예정 사례가 103건으로 전체의 45.0%를 차지했다.
퇴직 경찰관의 법무법인 취업심사에서 핵심 판단 기준은 퇴직 전 담당 업무와 취업 예정 기관 사이의 업무 관련성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윤리법 제17조에 따라 취업심사 대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취업 예정 기관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지를 살핀다.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취업제한 결정이 내려진다. 다만 공익 증진이나 국가경쟁력 강화 등 대통령령이 정한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취업승인이 가능하다. 이 같은 특별 사유가 인정되지 않으면 취업 불승인 결정이 내려진다.
인사혁신처는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제도에 대해 “부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과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할 가능성, 업무 관련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최근 취업심사가 한층 엄격해진 배경에는 경찰 수사권 확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형사소송법 개정 등 수사구조 변화로 경찰의 수사 권한이 커지면서 경찰 출신 인력의 수사 경험과 네트워크가 민간 법률시장에서 갖는 가치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서 축적한 수사 전문성을 민간 영역에서 활용하는 것과 별개로, 퇴직 전 담당 업무와 재취업 이후 업무 사이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에 “최근 취업심사 불승인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것은 수사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화되면서 심사 기준이나 판단도 보다 엄격해진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경찰이 수사의 온전한 주체로 자리 잡을수록 경찰 수사 경력이 법률시장에서 우대받는 이른바 ‘경찰 전관’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사례를 보다 세밀하게 판단할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로펌들은 경찰 출신 변호사뿐 아니라 고문과 전문위원, 경찰대 출신 신입 변호사 등으로 영입 대상을 넓히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경찰 출신 변호사·전문위원 등을 올해 초 18명에서 지난달 기준 25명으로 늘렸다. 율촌도 경기남부청 광역범죄수사대장 출신 변호사를 최근 영입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른바 ‘전경예우’ 논란과 수사 인력 유출에 대한 경계가 커지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로펌을 비롯한 사건 관계인과 사적으로 접촉하거나 사건 관련 문의를 받는 행위를 삼가도록 반복적으로 당부하고 있다.
경찰 수사권이 확대될수록 퇴직 경찰관을 둘러싼 법률시장의 수요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전문성 활용과 전관 특혜 차단 사이에서 취업심사 제도의 역할도 한층 중요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