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19일 고문헌과 현장조사,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영월 장릉(단종 능)의 석물 제작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가 오늘날 충북 제천 송학산 일대로 밝혀졌다고 알렸다. 사진은 영월 장릉 석물 전경. 사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강원도 영월의 단종 능, ‘영월 장릉’엔 돌로 만들어진 말(석마)과 호랑이(석호), 양(석양)을 비롯한 여러 석물이 꾸며져 있다. 조선 6대 왕 단종(1441~1457, 재위 1452∼1455)은 노산군으로 강등된 후 영월에 유배됐기에 애초 무덤엔 이 같은 격식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러다 숙종 24년(1698년) 단종으로 복위되면서 장릉이라는 능호와 함께 왕릉 제도에 맞춰 능역과 석물을 정비했다. 『단종장릉봉릉도감의궤(端宗莊陵封陵都監儀軌)』는 1698년(숙종 24) 9월부터 1699년(숙종 25) 6월까지 단종 복위와 장릉 조성 과정을 세세히 기록해 전하고 있다.
이 의궤 속에 언급된 석재 산지가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하 연구원)의 연구 조사를 통해 오늘날 충북 제천 송학산 일대로 밝혀졌다. 19일 연구원은 고문헌과 현장조사,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영월 장릉의 석물 제작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를 이같이 확인했다고 알렸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19일 고문헌과 현장조사,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영월 장릉(단종 능)의 석물 제작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가 오늘날 충북 제천 송학산 일대로 밝혀졌다고 알렸다. 사진은 영월 장릉 석물의 과학적 조사 모습. 사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19일 고문헌과 현장조사,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영월 장릉(단종 능)의 석물 제작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가 오늘날 충북 제천 송학산 일대로 밝혀졌다고 알렸다. 사진은 송학산 채석장 전경. 사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영월 장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강원도에 조성된 곳이다. 의궤에는 당시 영월 일대에서 부석(浮石, 돌산이나 바위에서 석재로 사용할 돌을 캐내는 일)할 곳을 조사했지만 적합한 석재를 찾지 못해 제천 북면 정암의 부석소로 이동해 석질을 확인한 뒤 이곳을 채석지로 선정했다고 돼있다. 문제는 현재 ‘제천 북면 정암’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
연구원은 조선말 제천군 북면 지역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천군 송학면에 편입된 점을 알아내고 이를 토대로 현재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남아 있는 정암마을을 정암 부석소의 유력 후보지로 추정했다. 특히 인근 송학산이 과거 8개의 화강암 채석장이 운영될 정도로 양질의 화강암 산지라는 점도 고려했다. 의궤에 능소와 부석소 사이 거리가 약 60리(약 24㎞)로 기록된 사실도 영월 장릉과 송학산 사이의 실제 거리와 대체로 부합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19일 고문헌과 현장조사,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영월 장릉(단종 능)의 석물 제작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가 오늘날 충북 제천 송학산 일대로 밝혀졌다고 알렸다. 사진은 석물 흑운모화강암의 근접 사진. 사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무엇보다 석물에 대한 비파괴 암석 조사 결과가 주효했다. 의궤에 따르면 일부 석물은 선조 때 설치된 것을 재가공해 사용했고, 무덤 주변을 꾸미는 혼유석(魂遊石)·고석(鼓石)·장명등(長明燈)과 석마·석양·석호 각 1쌍은 모두 새롭게 제작했는데 연구원 조사 결과 모든 석물이 흑운모화강암으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석질은 제천 송학산 일대 암석에서 확인된 흑운모화강암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원 측은 “이번 연구는 고문헌 기록과 과학적 분석을 종합해 장릉 석재의 공급지를 규명한 사례”라면서 “석재 산지, 제작 기술을 규명함으로써 유물 복원용 석재 선정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연구 결과는 올해 안에 관련 학술지에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