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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핵 수렁’ 빠진 트럼프, 북핵에 눈돌린다…WSJ “가을 김정은 만남 추진”

중앙일보

2026.08.1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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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르면 올 가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1대1로 만나기 위해 참모들을 다그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미는 19일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하반기 정례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의 규모와 기간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선제적 행동을 취한 모양새가 됐다. 이란의 핵 보유를 막겠다며 시작한 전쟁으로 오히려 수렁에 빠진 트럼프가 친분이 있는 김정은과의 대화 재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손을 맞잡은 모습. 사진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손을 맞잡은 모습. 사진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당국자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다음 아시아 순방 때 김정은과 개인적으로 만나기 위한 논의를 비공개로 진행해 왔다”며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APEC) 정상회의가 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핵 포기를 설득하기 위해 1기 당시 보여줬던 극적인 외교적 여정을 재개하려고 참모들을 압박하고 있다”면서다.

WSJ는 “김정은과의 중대한 만남에 대한 트럼프의 열망은 이란전 승리가 요원한 가운데 최고의 외교적 성과를 간절히 찾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과의 1대1 회담을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기회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WSJ는 “공식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계획은 없다. 대부분 미 대통령들은 수십개의 핵탄두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독재자 김정은과 조건 없이 만나는 것은 거부해왔다”고 설명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에도 트럼프는 계속해서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해 왔다.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을 때도 공개적으로 회동 의사를 밝히면서 판문점 방문 동선까지 살펴봤으나, 북한은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한 건 이란전과 관련한 한국의 소극적 지원 등에 대한 불만이 작용한 결과지만, 동시에 김정은에게 직접 행동으로 진정성을 표시한 게 됐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연합훈련 축소 지시와 연결시켰고, 김정은으로부터 “응답이 왔다”고도 주장했다.

이와 관련, 실제 김정은은 지난 2018~2019년 북·미 대화 국면에서 연합훈련 중단 및 취소를 지속적으로 트럼프에 요구해 왔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2019년 6월 트럼프가 김정은과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한 약속을 어기고 연합훈련을 진행하려 한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한·미가 진행하는 하반기 정례 연합연습 ‘을지자유의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가 17일 시작됐다. 이날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대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한·미가 진행하는 하반기 정례 연합연습 ‘을지자유의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가 17일 시작됐다. 이날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대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당시보다 비핵화 대화에 응할 유인이 한층 작아졌다는 지적이다. WSJ도 북핵이 미국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라는 미 정부의 평가를 전하면서 “김정은은 미국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할 것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 결렬 뒤 핵 능력 고도화에 몰두해 왔고, 핵시설을 확장·가동하는 등 핵물질을 크게 늘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 동맹에 준하는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최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등을 계기로 소원했던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이는 협상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담보할 수 있는 핵심적 수단인 제재 효과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 역시 북한과의 대화를 공개적으로 희망하면서 김정은의 전략적 지위는 전례 없이 높아졌다. 협상이 성사된다 해도 김정은이 더 유리한 구도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런 대외적 환경 변화를 국제사회로부터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기회로 삼겠다는 김정은의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북한은 그간 트럼프와의 대화에는 여지를 두면서도 핵 문제는 아예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이미 헌법에 핵 보유를 못 박고, 선제적 사용까지 포함하는 개념의 핵 무력 법제화를 진행한 김정은은 “비핵화 시도 자체가 위헌”이라고 직접 규정했다.

이런 구도에서 북·미 간 협상이 이뤄질 경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 본토에 대한 위협만 제한적으로 제거하고 한국을 노린 중·단거리 미사일 등은 묵인한 채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해주는 ‘스몰 딜’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동맹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트럼프가 주한미군이나 확장억제 등을 협상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한국에 대한 실질적 핵 위협은 여전한 상태에서 한반도 안보가 직격탄을 맞을 우려도 있다.

WSJ는 “한국 정부는 미·북 간 대화를 지지하지만, 전문가와 미 당국자들은 잘못된 합의가 한국 등 역내 동맹국과의 관계에 궁극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WSJ에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미국의 외교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또 다른 독재자를 달래는 격”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건 호스트인 중국이 탐탁지 않아 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진핑이 공들인 최고위급 외교 이벤트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더 주목받고, 행사 자체가 이들의 회담을 위한 배경으로 전락하는 걸 원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이 의제 설정과 회담 방식 등에 관여해 협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유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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