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젖줄이 말라가고 있다. 유럽의 다뉴브·라인·포강, 미국 콜로라도강 등 주요 하천이 폭염과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면서다. 이로 인해 화물 운송과 발전, 농업 생산은 물론 관광까지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마저 올가을 가뭄에 시달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물 부족이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쾰른을 흐르는 라인강의 모습. 계속된 가뭄으로 독일 내 라인강 여러 구간의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 신화=연합뉴스
가뭄은 유럽 관광 산업을 흔들고 있다. 여행전문매체 FTN뉴스는 18일(현지시간) 다뉴브강과 라인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크루즈 선박 운항이 잇따라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다뉴브강을 보러 온 스페인 관광객 120여 명이 배가 다니기 어려워지자 최대 1500㎞를 버스로 이동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가 전했다. 라인강에서도 수심이 얕아 수상 운송의 기준점이 되는 카우프 구간의 수위가 2018년 기록한 종전 최저치 25㎝를 밑돌면서 암스테르담~바젤 크루즈의 운항 일정이 변경되고 있다.
화물 운송에도 비상이 걸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카우프의 수위가 낮아지자 로테르담항과 라인강을 오가는 화학제품·석유 화물선은 좌초를 피하기 위해 평소 운송 화물의 약 30%만 싣고 있다. FT는 이번 사태가 “독일의 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최대 0.2%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전했다. “저수위가 한 달간 이어지면 내륙 수상운송량은 약 25%, 산업생산은 약 1% 감소할 수 있다(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서부 카우프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라인강의 팔츠그라펜슈타인성. 가뭄으로 강 수위가 크게 낮아지면서 성이 자리한 섬 주변의 강바닥이 드러나 있다. AFP=연합뉴스
발전소와 공장에도 피해가 번졌다. 다뉴브강 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는 헝가리 팍스 원전은 이달 초 가동률이 약 10%까지 떨어졌다.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JRC)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도 지난 6월 말 강물 수온 상승과 유량 감소로 원자로 3기가 멈추고 8기가 전력 생산을 줄였다. 독일의 한 화학업체에선 공장의 일부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통보까지 나왔다.
주민 생활과 농업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다뉴브강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구간 수위가 14~19㎝까지 떨어진 지난 4일 인근 센텐드레에서는 4000~5000가구의 식수 공급이 한때 끊겼다. 이탈리아 포강 유역에서는 물 부족으로 일부 농가의 쌀 생산량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 다뉴브강을 통해 루마니아 곡물을 콘스탄차항으로 보내는 운임도 수확기 전 t당 11유로(약 1만 8000원)에서 최대 20유로(약 3만 2000원)로 8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세르비아 프라호보 인근 다뉴브강에서 사람들이 소형 보트를 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독일 군함 주변을 지나고 있다. 가뭄과 폭염으로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물속에 잠겨 있던 군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같은 가뭄 피해로 유럽에서 최소 500억 유로(약 81조5345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FT는 전했다. 네덜란드 트리오도스은행은 폭염과 산불 피해까지 합치면 올해 손실액이 EU GDP의 약 1%인 1800억 유로(약 294조87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10년간의 폭염이 2030년까지 반복될 경우 프랑스·이탈리아·독일·스페인 4개국의 누적 GDP 손실만 약 5550억 유로(약 904조6722억원)에 달할 수 있다(알리안츠리서치)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볼더시티 인근 미드호에서 수위가 낮아지면서 물 밖으로 드러난 보트. 미국 최대 저수지인 미드호는 장기 가뭄과 물 수요 증가로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콜로라도강에서도 물 부족이 심해지고 있다. 양대 저수지인 미드호와 파월호의 합산 저수량이 지난달 195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전했다. 이에 미 연방정부는 파월호의 방류량을 20% 줄였다. 애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 등 하류 지역의 물 사용량을 기존 할당량보다 최대 40% 감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콜로라도강은 약 4000만명과 2만2000㎢가 넘는 농지에 물을 공급하는 만큼 감축이 현실화하면 농업용수도 영향을 받는다.
유럽과 미국 등의 가뭄으로 세계 곡물 생산도 지난해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3일 올해 세계 곡물 생산량을 29억8330만t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약 1.9% 감소한 규모다. 특히 밀 생산량은 8억650만t으로 4.3%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2026~27년 말 세계 곡물 재고는 9억5780만t, 재고율은 32.0%로 전망돼 당장 세계적인 곡물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은 아니다.
가뭄 피해는 아마존강으로 번질 수 있다. 강력한 엘니뇨(남아메리카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것)가 아마존 건기가 끝나는 10~12월 정점에 이를 가능성이 나오면서다. 브라질 기상당국에 따르면 엘니뇨가 우기 시작을 늦추고 기온을 높이는 한편 강 수위를 낮춰 산불 위험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가뭄이 심해지면 브라질의 대두·옥수수 생산과 아마존강을 이용한 운송에도 타격이 전망된다.
지난해 11월 12일(현지시간) 브라질 파라주 파라고미나스 인근에서 촬영한 아마존 열대우림의 모습. AFP=연합뉴스
한국에도 충격이 번질 수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당시와 마찬가지로 (가뭄으로 인한) 물류비 상승은 수입 원가를 높여 국내 수입물가와 생활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문제는 기후변화로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류두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히 여러 지역이 동시에 가뭄 피해를 입는 상황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한 지역의 가뭄’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가뭄’”이라며 “한 지역의 공급 차질은 다른 공급처로 돌릴 수 있지만 미국·유럽·남미가 동시에 흔들리면 대체 공급처 자체가 줄어든다. 이러면 국제가격과 운임이 함께 오르며 충격이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