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위기가 참 많았더라. 위기를 겪으며 경험이 쌓였고, 그 경험이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바탕이 됐다.”
지난 2024년 초 현역에서 물러난 권영수(사진)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현재 투자 컨설팅사 ‘뉴웨이브원’을 세워 벤처·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돕고 있다. 권 전 부회장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젊은 기업인들에게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며 “좋은 기술인지 아닌지 최종 판단자는 창업자가 아니라 고객”이라고 강조했다.
권 전 부회장은 LG그룹에 ‘싸움닭 정신’을 심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1979년 금성사(현 LG전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45세에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발탁됐다. 58세에 부회장에 올라 2024년 퇴임할 때까지 45년간 LG에 몸담았고, 이 중 17년을 최고경영진으로 일한 ‘LG맨’이다.
지난해엔 45년 직장 생활의 위기 극복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책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도 펴냈다.
직장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사표를 품은 것도 수차례였다. 1990년대 초 출장을 다녀와 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의 자리에 다른 선배가 앉아 있는가 하면, 외부기관 컨설팅에 반기를 들었다가 ‘반골’로 찍히기도 했다. 파란만장했던 직장 생활 중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가치는 ‘신실(信實)’이었다.
권 전 부회장은 “윗사람이 ‘언제 밥 한번 먹자’며 쉽게 건넨 말이 누군가에겐 ‘정말 나와 밥자리를 해 주시겠지?’라는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고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신실함은 거창한 게 아니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게 시작이다. 꼭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려고 했고, 한번 한 약속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오랜 기간 최고경영자(CEO)로 기업을 이끌며 가장 경계한 건 ‘걸러진 정보’였다. 전 부회장은 “직원이 현장에 다녀와 보고하면 고객의 ‘진짜 목소리’가 한 번 걸러진다”며 “우리 회사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면 CEO가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한다. 늘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했다”고 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려 리더가 직접 나서더라도 답부터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CEO의 의중을 먼저 읽고 알아서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 기업 문화가 윗사람이 짜장면을 시키면 전부 짜장면을 시키는 식인데, 그래서 항상 맨 마지막에 주문했다”고 했다. 이어 “좋은 재료가 있어야 좋은 음식이 나온다. 직원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야 좋은 판단을 할 재료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한 뒤 최종 판단은 CEO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 전 부회장은 “요즘 목표는 ‘내가 아는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것’이다. 늘 ‘나만 옳다’고 하면 성장하기 어렵다”며 “직장생활에서 경청과 배려, 신실함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