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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영웅전] 일본 대륙론자 우치다 료헤이

중앙일보

2026.08.19 08:04 2026.08.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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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일본에서 막부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도입되자 사무라이들은 불만이 컸다. 메이지유신 정부는 그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길이 곧 조선을 정벌하는 길이라 생각했는데, 그 앞에는 현해탄을 건너가는 길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하고 겐요사(玄洋社)라는 극우 단체를 조직한 인물이 있었다. 그가 곧 히라오카 고타로(平岡浩太郞)였다. 그에게는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1874~1937·사진)라는 조카가 있었다. 우치다는 히라오카로부터 조선 정벌에 대한 꿈을 이어받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음우를 입어 나라를 구하겠다는 뜻으로 덴유쿄(天佑俠)를 창설해 조선 정벌에 앞장섰다.

조선을 정벌하려면 조선에 방화(放火)를 할 필요가 있다는 군부의 요청을 받은 우치다는 조선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전봉준을 더 강렬하게 충동하고자 14명의 협객(俠客)을 이끌고 조선에 상륙했으나 전봉준을 만나지는 못 했다. 동학혁명을 빌미로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지만,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열강의 간섭으로 전리품을 잃게 되자 우치다 료헤이는 결국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우치다는 다시 1895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 정보를 수집했다. 이때 그는 대로필전론(對露必戰論)과 대로필승론(對露必勝論)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오랫동안 흑룡강변에서 노숙(露宿)하고, 장백산(長白山)의 바람으로 저녁을 지어 먹고, 요동의 들판에 세운 장막 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그 지역의 풍속과 인정을 시찰하고, 동아시아의 추세를 살피다가” 창립 회원 59명으로 고쿠류카이(黑龍會)를 창립했는데, 이는 일본의 북쪽 국경이 흑룡강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황되었지만, 그들의 꿈은 끝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곧 만주국(滿洲國)의 건설이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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