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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종철 열사도 기분좋다 할까

중앙일보

2026.08.1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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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논설실장

예영준 논설실장

그날 그 검사의 ‘촉’이 아니었더라면 박종철 열사 죽음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떻게 굴러갔을까.

1987년 1월 14일 저녁 7시40분쯤,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실로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수사단 소속 경찰 간부 2명이 변사 보고 및 지휘품신서를 들고 황급히 찾아왔다. 그날 새벽 조사받던 대학생이 숨졌는데 오늘 밤 안으로 화장하게 해달라며 유족과도 합의된 일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경찰은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타살 혐의 판단과 부검 여부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게 돼 있었다. 변사사건뿐 아니라 모든 경찰 수사가 그랬다. 순간 최 부장의 머리를 스친 생각은 “아들이 조사받다 죽었다는데 시신이 아니라 화장한 유골을 넘겨달라고 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느냐”는 의문이었다. 보고서에 ‘쇼크사’라고 기재된 사인도 찜찜했다. 그는 승인을 보류하고 다음 날 재지휘를 받으러 오라고 경찰관을 돌려보냈다.

박종철 죽음의 진실 밝혀낸 건
경찰 수사 의문 가진 검사가 한 일
수사·기소 분리 원칙 특검만 예외
과거 특수부처럼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루를 미루는 사이, 경찰이 숨기려던 대학생의 죽음은 중앙일보 사회부 신성호 기자의 특종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결국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실시한 부검에 의해 사인이 밝혀지게 된다. 그 이후의 일어난 일들은 세상이 다 아는 바다. 만일 최 부장이 경찰의 말을 믿고 품의서에 서명해 주었더라면 고문치사의 증거는 인멸되고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지 모른다. 훗날 아무리 재조사를 하고 특검을 해도 증거가 없으니 열사의 죽음은 5공 시절 간간이 일어났던 ‘의문사’로만 남았을 것이다.

이제 다른 질문을 해 보자. 같은 일이 2026년 10월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이후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경찰의 사건 은폐 시도를 제도의 뒷받침 없는 검사의 ‘촉’만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설령 뭔가 미심쩍은 사실을 짚어냈다 해도, 검사에겐 수사지휘권은 물론 스스로 보완수사에 나설 수 있는 권한도 사라지게 됐으니 사건을 통째로 암장(暗葬)하는 건 마음만 먹으면 과거에 비해 훨씬 쉬운 일이 될 것이다. 1987년의 검찰이 박종철 죽음의 진실과 축소 조작까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제도적 장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찰을 깎아내리고 검찰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39년 전 경찰의 흑역사로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고, 그때 경찰과 지금 경찰이 같지도 않다. 따지고 보면 검찰에도 숱한 흑역사가 있어 쓰기 시작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막강 권한을 휘두르면서도 권력에는 관대했던, 혹은 권력의 하명에 충실했던 검찰의 행태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검찰 개혁의 명분이 됐고 많은 이가 자업자득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수사 주체가 검찰이든, 경찰이든 견제받지 않는 힘과 권한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돼 있다는 점이다. 검찰에 문제가 있다면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제도적으로 만들면 될 일이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검수완박은 보완수사권마저 박탈하는 것이니 검찰의 힘을 빼앗아 그대로 경찰에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엔 ‘또 다른 검찰’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 경우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개정 형소법이 정교한 법 이론에 따라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훼손돼선 안 될 금과옥조라면, 수사와 기소는 물론이고 기소 후 공소유지까지 다 맡는 특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군가 여권 정치인이 야당 시절 이렇게 속내를 얘기한 적이 있다. “검찰을 왜 개혁 대상으로 삼나. 집권하면 개혁의 칼로 써야지….”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틀린 얘기가 됐지만, 개혁의 칼로 검찰 대신 특검을 개혁의 칼로 쓰는 방법은 살아 있고, 지금 진행 중이라고 본다. 과거 검찰 특수부와 같은 역할을 특검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 결과야말로 검찰 개혁의 명분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다.

형소법 개정 과정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걸 감수하면서도 정해진 길을 강행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행태나, 심지어는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소신에 반한다면서도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제어하지 못하는 현실이 그랬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검찰 개혁이 민주당원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시험지처럼 되기도 했으나, 실은 민주당이 처음부터 검찰과 척을 진 것도 아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많이 받은 인물이지만 재임 중에는 특수부를 정국 운영에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세간에는 검찰 개혁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연관짓는 해석이 넘친다. 실제로 민주당 정치인들의 언행이 이를 뒷받침한다. 형소법 개정을 주도했다는 누군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다녀온 뒤 “‘아 기분좋다’고 하고 계시지요”라고 썼다. 그래서 권한다. 박종철 열사 묘소에 가서 검수완박도 이뤄내고 검찰의 경찰 견제장치도 다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하길. 박 열사도 과연 “기분좋다”고 할까.





예영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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